자유 게시판

한옥의 향기 (운강고댁)

채우리1 2008. 1. 18. 11:20

 

  운강고택   효남 박병규書  (1925~1994)

 

 

    운강고택 대문

 

   사랑채

 

 사랑대청 끝나는 뒷기둥에는 일각문.

 대문을 들어선 부녀자들은 사랑채 앞을 지나지 않고 이 일각문을 통해서 후원을 지나 안마당으로 들어간다.

 

  사랑채 후원.  안채 앞 6간의 간막이 없는 곡간(穀間)+작은 판문+온돌방 2칸

 

 안채 앞 곳간 옆 사랑채와 연결된 2칸 온돌방(뒷사랑방)은 내당 여인들이 친가에서 온 남정네와 상면하던 방.  뒷사랑 툇마루.

 중사랑채는 서당으로 사용하였던 곳이다. 책방과 온돌방·마루방으로 구성,  이 집 아이들이 7~13세 때 공부하던 방


 

  중사랑채   『進溪先生偃仰所』 이건직 편액▲  

                                                                       『百榴園』이라 쓴 일중 김충현(1921~2006)의 편액이 걸려 있다. ▼

 

   중사랑채 후원  백류원

 

  사랑채와 중문채 사이의 꽃담

 

  사랑채 + 중문채는 안채의 남편에 가로 놓인  문 1칸과 4간 광채는 의류와 주류의 곡간이다.
 

  안채.     7 간에 너비는 간반인데 부엌이 4간으로 부엌·안방·대청·안사랑이 배열되어 있다.
             대청은  3간크기 정도이며 기제시(忌祭時)의 제청(祭廳)으로 쓰인다고 한다.

 

  안채 마루 아래는 칸마다 두꺼운 목판널을 달아 디딤돌 역할을하고 있다.

 

  안채 후원. 거석신앙의 바위 (칠성신앙)

 

    안채 굴뚝.  골바람이 샌 지역은 담장보다 낮게 굴뚝을 구성

 

 안채옆의 행랑채는  맞배지붕으로 一자형 평면 건물. 왼쪽부터 방앗간·곳간 하인들의마루·방·부엌이 배열되었다.

  방앗간 뒤쪽에는 주인과 하인들이 따로 쓸 수 있도록 2간 측간(厠間)을 두어 구분 사용케 하였다.

            벽은 아래와 위를 구분하여 아래는 화방담처럼 토석으로 투박하게 벽면을 처리하였다.

            기둥과 벽 사이에 용지판을 대어 나무기둥의 수명을 고려하였다.

 

  사랑채 일각문을 통해 후원을 지나 안채로 들어오는 문

 

  사당채: 내당(內堂)의 옆편에는 담장을 두른 사당채(가묘).

 

   동창천이 흐르는 언덕에 올라앉은 만화정 전경

 

운강고택(雲岡故宅)  중요민속자료 제106호    경북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269  

조선 후기 주택으로1726에 박중응이 처음 세운 후 1824에 운강 박시묵 선생이 중수.

그의 증손인 순병(淳炳)이 1905년에 다시 중수하였다고 전하는 대지 1,770평에 다시 지은 대가옥이다.

 

대문간채.큰사랑채.중사랑채.안채.고방채.행랑채.사당채 등 모두 9채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소슬대문에는 병규 근서의‘운강고택’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사랑채마당과 후원, 중사랑채 후원, 안채 마당과 후원 등이 넓은 공간을 이룬다.


중사랑채는 1칸 책방과 온돌방·마루방이 있어 서당의 규모를 잘 갖추고 있다. (7세~13세 때 공부하던 곳).

 

안채중문채에는 곳간과 장류.주류를 저장하던 광채가 있으며,

안행랑채에는 정지.하녀방.곳간. 방앗간과 뒷간이 있다.

 

만화정은 운강고택의 부속건물로 선향들이 마음을 다스리며 후학들이 공부하던 곳.

청도군 향토사학자회 박윤제 회장님의 해설로 조선시대의 생활상 및

전통한옥 공간마다 속살까지의 향기를 맛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