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애삼존불 서산
말 많고 탈 많던 보호각을 철거한 마애삼존불상을 보러 갔습니다.
답답한 보호각 속에서 백열등 불빛을 받아 변화하든 모습을 보던 것이 전부였는데
시간에 따라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부처님의 모습을 보니 흥미진진합니다.
보호각 내에서야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이었으니 기도나 절을 하는 사람이 아니면
오래 있기가 힘이 듭니다.
그러나 자연에 노출된 마애불은 구름이 지나가면 지나가는 대로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잎들의 떨림도
해가 떠오르고 지는 것에 따라 그 모습을 모두 달리합니다.
구름이 태양을 가려 어두워 졌던 부처님의 얼굴도
시간이 흘러 바람이 불거나 해가 지나가면 다시 환해지며 그 놀라운 미소를 보여주시니
'모든 것은 지나가리라'
'유상이 무상이고 무상이 또한 유상이다'
그 자체가 설법입니다.
답답한 보호각 내로 한정되었던 시야는
가야산과 용현계곡의 푸르름을 넘어 맑은 하늘까지 모두 담아내니
보이는 곳 모두가 부처님의 세계입니다.
마애불중 오른쪽에 위치한 부처님이십니다.
햇살을 받아 환하게 미소짓는 얼굴이 너무 좋습니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환해지는 미소입니다.
진리를 상징한다는 보주를 가슴에 들고 있습니다.
금강경에 나오는 연등불이란 설이 유력합니다.
이분이 길을 가실 때 물이 고인 곳이 있어 난처한 빛을 띠자 어린 소년이 다가와
자신의 삼단같은 머리카락으로 그 물 웅덩이를 덮어 부처님이 지나가시게 했습니다.
이에 부처님은 네가 다음에 태어나면 부처가 될 것이라고 수기를 하셨습니다.
이 구절을 가지고 금강경에서는
그 때 수기한 것이 수기한 것이냐 묻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 연등불이 부처가 될 것이라고 했기에 부처가 된거냐고 묻는 것이지요.
수기한 사실은 있지만 수기한 것 때문에 부처가 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거의 인연도 좋지만 지금 머무르지 않는 그 마음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하기 위해서
인용한 사실이지요.
이 부처님은 가슴에 품은 진리(불법)을 넘겨줄 부처님을 발견하신 것으로 자신의 일을 다 했다는 마음에 안식을
얻으셨나 봅니다.
진흙탕물에 머리를 드리운 소년을 발견하고 불법은 끝나지 않았다는 안도와 함께 밀려드는 즐거움이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부터 북받쳐 올라와 입과 눈으로 밀려나오는 그 순간의 얼굴이 이와 같지 않을까요.
해가 나고 시간이 지나니 삼존불에도 햇살이 들어 아까와는 또 다른 미소를 보여주십니다.
가운데 계신 분이 석가모니 부처님이십니다.
그 옆에 계신 부처님께 머리카락을 드리워 사쁜이 즈려밟고 가시게 했던 소년이
몇 생의 윤회를 거쳐 드디어 깨달아 부처의 반열에 올라서셨습니다.
과거불 현재불 미래불인 삼세불을 자연바위 위에 새겼는데 가운데 계신 부처님이 자연스레 커졌습니다.
금강경에 과거심도 없고 현재심도 없고 미래심도 없다고 했으니 어느것이 더 중요하고 아니고도
없을 터이지만 이곳에 부처님을 새긴 석공과 시주자에게는 과거나 미래보단 현재가 더 중요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머무르지 않는 그 마음을 내는 것이 바로 부처라 했으나 그래도 현세를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현세에 오신
부처님이 더 크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가운데 부처님은 인자하게 웃으시지만 그렇다고 실눈을 떠서 자신의 공덕을 보지 못할까 두려운 마음에
옆 부처님과 달리 웃음기 넘치는 눈도 부릎뜨고 있습니다.
갓난아기로 돌아가는 것이 도라고 했나요.
해맑아 사심이 하나도 없는 가장 순수한 얼굴을 표현하라면 이 부처님의 얼굴 아닐까요.
그리고 이얼굴은 아기의 얼굴이고요.
그 미소띈 얼굴과 가장 잘 맞는 시무외인(두려워 말라는 손바닥을 바깥으로 향한 모습)과
너희가 바라는 것 한 놓치지 않겠다는 듯 부릅뜬 눈은 여원인(네가 뜻하는 것을 들어주겠다는 팔을 아래로 늘어뜨려
손바닥을 상대방쪽으로 한 모습)과 서로 어울립니다.
과거와 현재가 있다면 미래가 있습니다.
미래부처님이신 미륵부처님은 지금 의자에 앉아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계십니다.
부처님이 입적 후 56억7천만년후에나 온다는 부처입니다.
56억7천만년은 존재는 하지만 너무 크고 너무 먼 미래의 일이라
그래서 미륵부처는 언제나 마음속에 부처입니다.
마화갈라보살이 석가여래에게 수기를 주었듯 미륵보살도 미래부처로 수기를 받았습니다.
도솔촌 내원궁에 머무르면서 설법을 주재하지만 가장 큰 임무는 미래불로서
현세에 내려 올 때 입니다.
그래서 중생을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 늘 고민하는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그 모습에서 자신은 어떻게 할 생각없이 부처님이 미리 다 고민하셔서 한방에 다 해결해 주시기를 바라는
인간의 이기심을 봅니다.
과거불 현재불 미래불 그 긴 시간의 흐름속에서 여기에 와서 삼존불을 배알하는 나를 보며
부처는 부처가 아니고 단지 그 이름이 부처일 뿐이다 라는 금강경의 구절을 생각해 봅니다.
과거불 현재불 미래불이 새겨진 서산 마애삼존불 앞에 서서
과거심도 없고 현재심도 없고 미래심도 없으니 어디에 점을 찍을 것인가 물었다는
떡장수 할머니의 말씀을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