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멸보궁의 정암사와 정선 레일바이크
적멸보궁의 정암사와 정선 레일바이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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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마노탑에서 내려다 본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의 한 곳인 정암사 전경 |
태백산 정암사는 신라 선덕여왕때 고승 자장율사가 당나라 산서성에 있는 청량산 운제사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석가세존의 정골사리, 치아, 불가사, 패엽경등을 전수하여 귀국, 동왕 14년에 금탑, 은탑, 수마노탑을 쌓고 그 중 수마노탑에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유물을 봉안 후 건립 하였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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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암사 일주문 | ▲ 일주문을 지나면 정면의 산자락 높은 곳에 수마노탑이 보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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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내를 들어서서 바라 본 수마노탑 원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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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멸보궁 방향에서 바라 본 경내 전경 |
정암사 적멸보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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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멸보궁은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를 모셔놓는 건물을 가리킨다. 정암사 적멸보궁은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영조 47년(1771)에 고쳐 지은 것으로 미루어 18세기 초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며 이 후에도 여러 차례 보수하였다. 이곳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석가모니불의 사리를 정암사에 수마노탑을 세워 안치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세운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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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마노탑을 오르기 직전에 바라 본 경내 전경 |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꾸몄다. 안쪽에는 불상이 없고 신중탱화 2점과 동종 1점을 보관하고 있다. 이는 수마노탑에 부처님의 사리가 있기 때문에 불상을 모시지 않는 적멸보궁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통도사, 법흥사, 상원사, 봉정암의 적멸보궁과 더불어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의 하나로 불린다. |
정암사 수마노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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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마노탑 전경 |
▲ 수마노탑에서 내려다 본 경내 전경 |
정암사 적멸보궁 뒤의 산비탈에 세워진 7층의 모전석탑이다. 모전석탑이란 전탑을 모방한 탑으로, 돌을 벽돌 모양으로 깎아 쌓아올린 탑을 말한다. 화강암으로 6단의 기단을 쌓고 탑신부를 받치기 위해 2단의 받침을 두었다. 탑신은 회녹색을 띤 석회암으로 쌓았는데, 표면을 정교하게 잘 정돈하여 벽돌을 사용한 것처럼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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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몸돌의 남쪽면에는 감실을 마련했으며, 1장의 돌을 세워 문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는 철로 만든 문고리를 달았다. 지붕돌은 추녀 너비가 짧고 추녀끝에서 살짝 들려있으며, 풍경이 달려 있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수는 1층이 7단이고, 1단씩 줄어들어 7층은 1단이며, 지붕돌 윗면도 1층이 9단, 1단씩 줄어들어 7층은 3단으로 되어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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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대기의 머리장식으로는 청동으로 만든 장식을 올렸다. 돌벽돌의 일반적인 크기로 보아 그리 거대한 편은 아니지만 형태가 세련되고 수법 또한 정교한 탑이다. 탑 앞에 돌이 하나 있는데, 여기에 새겨진 연꽃무늬, 안상 등은 모두 고려시대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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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석탑은 파손이 심해서 1972년 해체·복원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탑을 세운 이유를 담은 탑지석(塔誌石) 5개와 금·은·동으로 만들어진 사리구가 발견되어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보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의 모습이 언제부터 전해진 것인지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어서 확실하지 않지만, 정암사에 있는 여러 유물과 비교해 볼 때 고려시대에 처음 만들어졌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
정암사를 돌아나와서 증산역에서 꼬마열차를 타고 아우라지로 레일바이크 타러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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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마 유람열차 내부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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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선을 힘차게 달리던 꼬마열차(정선유람열차)가 노선증설로 인해 당분간 아래와 같이 운행이 중단 되었습니다. ◀ 꼬마 유람열차 내용은 정선군청 홈페이지에서 가져 옴. 꼬마 유람열차는 1량이 운행되는데, 단체로 예약하면 1량을 추가로 더 붙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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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레일바이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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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 레일바이크 출발 장소에 있는 여치와 어름치 모양의 카페 전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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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레일바이크 정보(정선군청 홈페이지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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