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여행] 숲이 나에게 마음을 맡기라 하네
서걱서걱. 바스락바스락. 오직 자연의 소리만이 바람에 나부끼는 가을의 숲.
그 고즈넉한 길 한자락에 마음의 짐을 풀다.

숲이 나에게 마음을 맡기라 하네
서걱서걱. 바스락바스락. 오직 자연의 소리만이 바람에 나부끼는 가을의 숲. 그 고즈넉한 길 한자락에 마음의 짐을 풀다.
글·사진 박은경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늘 지치기 위한 여행을 해왔다. 먹고 타고 보느라 지치고, ‘하루에 몇 킬로를 걸어야지 ’속도‘에 대한 강박관념에도 시달린다. 분명 일상의 치열함에서 쉬고 싶어 길을 나섰는데, 또 다른 경쟁을 스스로 만들며 모든 기력을 소진한다.
단 하루만이라도 진정한 ‘쉼’을 누리고 싶다면 숲으로 발을 내딛어보라. 첩첩산중 오지가 아니어도 좋고 마을 뒷산이라도 괜찮다. 온통 나무와 낙엽뿐인 길을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질 테니 말이다.
산그늘 아래 치유의 숲 산음 자연휴양림
경기도 양평 산음리에 위치한 산음 자연휴양림은 국내 최초의 ‘치유의 숲’이다. 휴양림은 농가 몇 채가 전부인 마을을 지나 10분가량 더 깊숙이 들어가야 비로소 얼굴을 내주는데, 여러 봉우리에 둘러싸인 탓인지 쓸쓸함보다는 아늑함이 느껴진다.
치유의 숲에 발을 들이면 조용한 계곡을 따라 우거진 원시림이 펼쳐진다. 낙엽송, 전나무, 잣나무, 참나무, 층층나무, 물푸레나무, 자작나무가 당신을 위한 치유의 숨결을 아낌없이 내뿜고, 정겨운 계곡물과 청명한 새들의 노랫소리는 마음의 생채기를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낙엽 쌓인 숲길을 만났다면 살그머니 신발을 벗어보자. 아스팔트 바닥에 혹사 당해온 당신의 발을 위한 특별 처방이다. 솔솔 부는 산바람에 낮잠 생각이 간절하다면 산을 베개 삼아 누워도 좋다. 온갖 빛깔의 이파리들이 그린 하늘은 유명 예술품 못지않게 아름답고, 스트레스에 찌들어 오염된 기운은 맑은 공기 속에 정화되어 바람에 날려간다.
적당히 땀이 밸 정도로 숲길을 걸으며 잡념을 버리는 데는 ‘홀로길’이 최고다. 휴양림 입구 근처에 조성된 홀로길은 혼자 걷기에도 빠듯한 좁은 오솔길. 처음 20분간만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기암괴석과 야생화가 어우러진 평탄한 길이 1시간가량 이어지므로 큰 부담 없이 도전해도 좋다. 하지만 이렇다 할 표지판이 없는데다 낙엽으로 길이 덮여 헤맬 수 있으므로 초행길인 경우 반드시 숲 해설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내려오는 길은 화려한 가을단풍의 향연이다. 타박타박 걸으며 콧노래를 부르거나 깊고 긴 복식호흡을 하며 근육을 이완시켜보자. 기분을 좋게 만드는 피톤치드가 코와 입으로 스며들어 산책길을 나올 때쯤엔 상쾌한 자연 냄새만이 몸 안에 가득하다.

한결 깊은 위로가 필요하다면 산림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해보자. 5~10명이 한조를 이루는 치유 프로그램은 스트레스 예방 및 관리를 주제로 당일 또는 1박2일(2박3일·3박4일)로 진행된다.
참가자들은 본격적인 치유에 앞서 건강진단을 받게 되는데, 신체적·정신적 스트레스, 혈관 나이, 스트레스 대처지수, 자율신경 균형지수 등 검사와 상담을 통해 현재의 몸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체험은 스트레스 예방 및 관리 강의, 산림욕과 숲속 산책, 오감 깨우기 등으로 이뤄진다. 항목만 죽 늘어놓고 보면 뭐 특별히 대단한 게 있을까 싶지만, 평범함 속에 담긴 비범한 위로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후련함을 전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프로그램은 숲속 오감 깨우기. 말 그대로 숲속을 산책하며 무뎌진 감각들을 깨우는 시간이다.
참가자들은 숲 치유사와 함께 숲길을 거닐며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고, 바라도 보고, 손으로 느낀다. 애틋한 돌멩이를 주워 자신과 닮은 점을 찾아보기도 하고, 가장 마음에 드는 나무에 안겨 향기 넘치는 위로도 받는다. 또 시냇가에 이르면 아무 바위고 걸터앉아 물소리에 마음을 빼앗겨 보고, 숲 치유사가 건네는 편지 한통에 갑작스러운 행복도 느끼며, 맨발로 춤추는 나를 사랑하는 법도 배운다.
프로그램이 모두 끝나면 한 번 더 건강 체크가 이뤄진다. 열에 아홉은 스트레스 지수와 자율신경 균형지수가 눈에 띄게 좋아지는데, 이는 숲의 공기 중에 있는 피톤치드와 테르펜, 그리고 음이온이 인체 조직과 정신 상태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당일 치유 프로그램은 예약자에 한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나, 휴양림이 문을 닫는 매주 화요일을 비롯해 외부 행사 등으로 진행이 불가능한 날도 있으므로 미리 확인해야 한다. 아울러 1박2일 이상의 프로그램은 휴양림이 지정한 특정 날짜에만 진행되며, 사전 신청자 중 심사를 통해 선발된 사람에 한해 참여가 가능하다.
위치 경기 양평군 단월면 산음리 산 84번지 문의 031-774-8133, 3936
사람도 숲이 되는 국립수목원
경기도 포천시 국립수목원은 인근에 조선왕조 7대 임금인 세조의 묘 ‘광릉’이 있어 일반인들에게는 광릉수목원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수목원은 540여년 이상 자연 그대로 보전되어 온 원시자연림과 1970년대부터 조림한 외래종 나무들이 한데 어우러지며 울창한 숲을 이루는데, 마치 깊은 숲속을 거니는 듯 짙은 향기가 배어 나온다. 큼직큼직한 나무들과 넉넉한 길 덕분에 아기자기한 느낌은 덜한 편. 하지만 쭉쭉 뻗은 전나무 숲길을 만나고, 나무 데크로 된 숲 생태 관찰로를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수목원에 조성된 15개 정원에서는 3344종류의 식물이 눈길을 잡는다. 꽃이 아름다운 나무만 모아 심은 화목원, 물가에서 잘 자라는 식물만 옮겨 놓은 습지식물원, 다른 물건을 감고 올라가는 식물을 모아 전시한 덩굴식물원 등 어슬렁거리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식물들이 가득하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손으로 보는 식물원도 있다. 이곳엔 향기가 나거나 잎과 줄기 등이 특별해 감촉으로 구분하기 쉬운 식물들을 모아 두었는데, 눈을 감고 마음으로 구경해야만 진짜 재미를 느껴볼 수 있다.

국립수목원에는 아는 사람만 찾는 숨은 명소가 있는데, 다름 아닌 산림동물원이다. ‘거기 동물원이 있었어’되묻게 되는 이유는 위치를 알리는 표지판이 많지 않는데다 발견했다 하더라도 왕복 1시간 이상 걸리는 먼 거리를 나서기는 선뜻 내키지 않기 때문이다.
산림동물원은 일반 동물원과 달리 산속 깊이 조성된 것이 특징이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동물들을 평지로 끌어내려 가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동물을 찾아 산으로 올라가야만 한다. 게다가 동물과 동물 사이는 널찍하게, 관람객과 동물의 간격은 최대한 가깝게 조성돼 있어 좀 더 생생한 교감이 가능하다. 동물원에는 백두산 호랑이, 반달가슴곰, 늑대 등 포유류 8종과 독수리, 수리부엉이, 원앙 등 조류 6종이 살고 있다. 하이라이트는 단연 백두산 호랑이. 94년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이 한·중 우호 표시로 기증한‘진짜’백두산 호랑이다.
‘동물의 왕’을 만나러 가는 길은 약간 숨이 차오르는 정도의 오르막 산길. 하지만 호랑이의 범상치 않은 눈빛과 거친 숨소리를 마주하는 순간 그간의 고생은 싹 사라진다.
만약 올해 안에 백두산 호랑이를 꼭 만나려거든 서둘러야 한다. 산림동물원은 동물의 안정을 위해 1년의 절반은 관람이 제한되는데, 올해는 11월15일까지만 개방된다. 관람시간은 10시~16시까지. 관람인원에는 제한이 없다.
아울러 국립수목원은 사전예약제로 운영된다. 또 하루 입장객 수를 평일 5000명, 토요일 3000명으로 제한하고 있으므로 홈페이지로 미리 예약해야만 원하는 날짜에 입장이 가능하다. 관람시간은 화요일부터 토요일, 9시~18시. 일요일과 월요일은 문을 닫는다. 입장료는 성인 1000원, 청소년 700원, 초등학생 500원.
위치 경기 포천시 소흘읍 광릉수목원로 415 문의 및 예약 031-540-2000 www.kn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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