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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우체통에 띄우는 마음 한 조각

채우리1 2011. 12. 2. 00:26

 

 

[여행풍경] 특별한 우체통에 띄우는 마음 한 조각

이메일이 한국에 상륙했을 때, 세상에 이렇게 편리한 게 있느냐며 다들 놀라워했다.

돈 한 푼 안들이고 멀리 외국에까지 편지를 보낼 수 있으니 말이다.




특별한 우체통에 띄우는 마음 한 조각

이메일이 한국에 상륙했을 때, 세상에 이렇게 편리한 게 있느냐며 다들 놀라워했다. 돈 한 푼 안들이고 멀리 외국에까지 편지를 보낼 수 있으니 말이다. 그 후 사람들의 손마다 휴대전화가 놓이면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문자를 날리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뭔가 허전하다. 살짝 빈 느낌이 든다. 바로 편지가 전해주던 훈훈한 사람냄새가 아닐까. 받는 이의 얼굴을 생각하면서 가슴 설레며 고르던 예쁜 편지지도, 침을 발라 붙이던 우표도, 거리에서 쉽게 찾을 수 있던 빨간 우체통까지 이제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가마솥에서 뭉근히 끓인 숭늉 맛처럼 그저 그리움으로 남을 줄 알았다.

글 허윤주(자유기고가) 사진 박은경, 한국관광공사DB

꾹꾹 눌러쓴 손 글씨에 담긴 따스함이란

그런데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특별한 우체통이 여기저기에 생겨나고 있다. 그곳에 가면 추억에 젖은 얼굴로 편지지며 엽서를 들고 뭔가를 꾹꾹 눌러 적느라 열심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핸드폰 문자를 보낼 때와는 달리 사뭇 진지한 모습, 그래서 더 고와 보이는 사람들이다.

해돋이 명소인 울산 간절곶에는 연말연시뿐 아니라 연중 인기를 끄는 명소가 있다. 바로 거대한 몸통으로 딱 버티고 선 소망 우체통이다. 2006년 1월1일 해맞이 행사 때 제작된 이 우체통은 높이 5m, 무게 7톤의 육중한 몸매를 자랑한다. 우체통 뒷문으로 들어가면 무료 우편엽서가 비치되어 있다. 한 장씩 받아 사연을 적어 넣으면 매일 1차례 수거된다고.

엽서는 두 종류다. 원하는 주소로 배달되는 우편엽서가 있고 배달되지 않는 소망엽서가 있다. 저마다의 사연이 가득한 소망엽서는 울산시청으로 접수돼 지역방송을 통해 수시로 방송된다. 두 엽서는 모두 합쳐 1년에 무려 4만여 통이 날아든다고 한다.

가을마다 은빛 장관을 이루는 억새 군락지인 영남 알프스 간월재에도 곧 제2의 소망 우체통이 생긴다. 이 우체통은 간절곶 소망우체통보다 살짝 작은 높이 3m, 너비 2m 규모로 곧 선을 보일 예정이다.

1년 후에 배달되는 느림보 편지도

‘느림’을 몸소 실천하는 우체통은 더욱 새롭다. 인천공항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영종대교기념관에는 ‘느린 우체통’이 있다. 영종대교와 서해를 한가로이 바라보며 써내려간 편지를 넣으면 딱 1년 후에 수취인에게 배달된다. 미래의 나에게, 또는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에게 지금의 마음을 담아 보낸 편지를 1년 뒤에 받아보는 감동은 얼마나 특별할까.

느린 우체통은 전남 완도의 청산도에서도 만날 수 있다. 다랑이논 사이를 굽이굽이 감아 도는 느린 길가에 앉아 쓴 편지의 행간마다 그야말로 숨통 트이는 여유가 가득 담길 것이다. 거제휴게소(거제해양파크), 제주 올레길에서도 느린 우체통이 방문객들을 반긴다. 그중 제주 남원읍의 올레길 7코스에 있는 우체통은 1년 후 보내지는 빨강 우체통과 보낼 수 없는 편지를 담는 초록 우체통으로 나뉘어 있어 재미를 더한다.


 


 

전하지 못한 말, 부치지 못한 편지가 있다면

고백하자면 나 역시 편지를 잊은 지 오래다. 이메일로 안부를 전하고, 명절엔 문자 하나 삐죽이 보내고 마는 귀차니스트다. 하지만 편지를 생각하면 따라 올라오는 추억은 한 아름이다. 그 추억들은 몇 차례 이사를 다니면서도 끌고 다니는 종이상자 안에 먼지를 이고서 잠들어 있다. 하지만 언제라도 다시 꺼내 들춰보면 손 글씨 사이로 그때 그 얼굴, 그 느낌이 고스란히 살아난다. 그냥 날아가 버리는 이메일, 문자와는 다른 생명력이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느라 아쉽고도 분주한 연말연시다. 1분 1초가 급한 듯 헐떡거리는 자신에게 이제는 좀 쉬면서 주위를 둘러보면서 가자고 다독여보자. 그리고 이참에 예쁜 편지지 하나 사서 제대로 전하지 못한 마음을 담아 소중한 사람들에게 편지를 써보는 건 어떨까. 꼭 특별한 우체통을 찾지 않아도 좋으니 말이다. 참, 우푯값은 그새 올라 270원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