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여행/일출및 일몰풍경

황금빛 해야, 온갖 시름 안고 가거라

채우리1 2011. 12. 2. 00:48

 

 

[반가운 여행] 황금빛 해야, 온갖 시름 안고 가거라

어느덧 한 해의 끝자락. 2011년의 태양이 마지막 황금 물결을 준비하는 진도를 찾았다.
시린 바다를 달구는 햇덩이에 지난 시름은 태워 버리고 깨끗한 마음을 담아 수줍은 인사를 건넸다.

 잘 가라 2011년아. 올해도 고생했다.





황금빛 해야, 온갖 시름 안고 가거라

 

 

어느덧 한 해의 끝자락. 2011년의 태양이 마지막 황금 물결을 준비하는 진도를 찾았다.

시린 바다를 달구는 햇덩이에 지난 시름은 태워 버리고 깨끗한 마음을 담아 수줍은 인사를 건넸다. 잘 가라 2011년아. 올해도 고생했다.

 

글·사진 박은경

 

 

붉디붉은 물결에 보내는 뜨거운 안녕

 

진도는 붉다. 아니 ‘뜨겁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칼바람이 살결을 에이는 날씨에도 뜨거운 햇살이 내리고, 철 잊은 동백은 붉은 길을 만든다. 붉은 물결은 술잔에도 있다. 쌀로 빚은 술에 지초를 넣어 붉게 우려낸 홍주는 맛도 맛이지만 그 빛깔부터 매혹적이라 마시기 전부터 취기가 오른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을 홀리는 것은 단연 황홀한 낙조다. 대지를 쪼이던 해가 섬과 섬 사이로 쑥 하니 빨려 들어가며 내뿜는 오색 빛이 맑으면 맑은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장관이다.

진도에서도 해넘이가 빼어난 곳으로는 세방마을 앞바다가 꼽힌다. 이곳은 중앙기상대가 선정한 한반도 최남단 제일의 낙조 전망지이기도 하다. 특히 맑으면서도 구름이 적당히 있는 날 가장 아름다운 낙조를 볼 수 있는데, 화려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고 서러운 빛이 깃든 것이 꼭 아쉬움을 닮았다.


해는 먼바다부터 슬금슬금 물들이다 일순간 바다 전체를 삼킬 듯 붉고 노란빛을 내뿜는다. 한가지로 정의될 수 없는 그 오묘한 빛깔에 눈과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나마 엄지손가락을 닮은 주지도와 발가락 모양의 양덕도 등 재미난 모양의 크고 작은 섬들이 쓸쓸함을 중화시킨다.

해가 다 떨어지고 관광객 대부분이 자리를 뜨고 나면 검푸른 어둠이 그 자리를 메우는데 이 또한 으뜸이다. 붉고 푸른 여운이 어둠에 녹아드는 모습에 마음이 한결 시리다.

흔히 일몰은 세방낙조 전망대에서 맞이하지만 해안도로 어디에서나 감상해도 감동적이다. 여기에 호젓한 분위기를 더하려면 전망대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급치산 전망대에 올라보자. 세방낙조 전망대보다 한결 크고 장엄한 낙조를 볼 수 있는데다 외지인들에게 덜 알려져 번잡스럽지 않다.

 

 

낙조에 취해, 술에 취해

 

그윽한 낙조 덕에 저릿저릿해진 마음은 홍주가 명약이다. 홍주는 고려 시대부터 전해오는 전통 민속주로 임금님 진상품이었을 만큼 그 맛과 향이 탁월하다. 한 모금 입에 물었을 때 퍼지는 은은한 향과 뜨겁지만 깔끔한 목 넘김, 마신 후의 그윽한 여운까지 가히 전통 증류주의 진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주의 새빨간 빛깔은 지초에서 우러난 것인데, 지초는 색감은 물론 약효까지 빼어나 가정의 상비약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홍주는 40도가 넘는 고도주임에도 거나하게 취해도 몇 시간만 지나면 숙취가 사라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서둘러 바다로 떨어진 햇덩이에 자꾸만 미련이 남는다면 홍주로 뜨거웠던 일몰의 순간을 되새겨봐도 좋다. 맥주에 적당한 양의 홍주를 넣으면 은은하게 붉은색이 퍼지면서 해질 무렵의 바다 빛깔이 재현된다. 그 모습이 마치 세방낙조를 닮았다 하여 ‘낙조주’라고도 불리는데 폭탄주의 일종인 만큼 꽤 독하니 술을 즐기지 않거나 주량이 약하다면 그저 눈으로만 마시기를 권한다.

 

 

묵은 때를 벗고 새해를 준비하다

 

진도는 누구든 드는 순간부터 바쁜 속도와 일상의 번잡함을 저절로 내려놓게 만드는 섬. 조용히 한 해를 정리하기에도 더없이 좋다. 그중에서도 한적함과 여유는 물론 수려한 풍경까지 갖춘 곳이 있으니 바로 운림산방과 천종사다.


첨찰산 아래 자리한 운림산방은 소치 허련이 말년에 기거했던 화실이다. 소치는 초의선사, 추사 김정희에게 서화수업을 받아 시서화에 두루 능했던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화가로 ‘소치’라는 아호는 스승인 추사가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운림산방으로 들어서면 저만치 아담한 연못이 보이고 그 건너로 소박한 한옥이 눈에 들어온다. 한옥 뒤편으로는 산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주변에는 세월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노송들이 서 있는데 그 절묘한 어우러짐이 한 폭의 풍경화를 방불케 한다. 연못 한가운데 떠 있는 자그마한 섬에는 소치가 직접 심었다는 배롱나무 한그루가 꽃 피울 날을 기다리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산방 뒤에는 두 채의 초가집이 딸려 있다. 방안엔 고가구가 가지런하고 넓지 않은 마당엔 절구가 마치 소품처럼 놓여 있다.

옆문으로 나가 조금만 발걸음을 옮기면 진도역사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에서는 선사시대의 진도 유물과 생활상, 삼별초의 용장산성 전투 모형, 명량대첩 때 사용된 무기 등을 엿볼 수 있다.

천종사는 동석산 절벽 아래 위치한 고즈넉한 사찰이다. ‘천종(千鐘)’이란 말 그대로 ‘1000개의 종’을 뜻하는데, 이는 신라의 승려가 잠깐 동석산에 머물렀을 때 봉우리들이 일제히 종소리를 토해냈다고 하여 붙여졌다.


절 입구까지 차로 쉽게 들 수 있지만 웅장한 바위산에 둘러싸여 마치 깊은 산골을 찾아든 듯 고요하다. 게다가 운림산방 옆에 위치한 쌍계사만큼 널리 알려지지 않은 탓에 차분히 마음을 가다듬기에 좋다.

 


진도의 또 다른 보배들

보배롭고 진귀한 섬, 진도. 그곳에서 놓치면 아쉬울 또 다른 보물들.

 

 

세계적인 명견 진돗개

 

풍산개, 삽살개와 함께 우리나라 3대 토종개 중 하나인 진돗개는 천연기념물 53호로도 지정된 ‘진짜’보물이다. 예전에는 섬 밖으로의 반출이 일체 금지되었으나, 현재는 3개월 미만의 진돗개에 한해 연간 2000~3000마리의 다른 지역 분양을 허용하고 있다.


진도에서는 젊은이보다 만나기 쉬운 것이 진돗개라지만, 쓰다듬고 안아보고 함께 뛰어놀며 잊지 못할 추억까지 만들고 싶다면 진돗개사업소로 향해보자. 이곳에서는 한살 미만의 강아지 10여 마리와 같이 놀며 사진도 찍을 수 있고, 늠름한 몸매의 성견 70여 마리를 한꺼번에 만날 수도 있다.

게다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세 차례(9시30분, 15시30분, 16시30분)에 한해 진돗개의 훈련 모습을 참관할 수 있는데, 약 10분 동안 진행되는 고난도의 훈련을 지켜보는 내내 진돗개의 총명함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소리 내어 우는 바다 울돌목

섬 초입 진도대교 아래에 있는 울돌목은 ‘소리 내어 우는 바다 길목’이라는 뜻의 순우리말로,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판옥선을 이끌고 133척의 왜선을 무찌를 명량대첩지로도 유명하다.

울돌목은 다른 지역에 비해 유달리 육지와 섬이 가깝게 붙은 것이 특징. 때문에 이곳의 바다는 계곡의 급류처럼 우렁찬 소리를 내며 변화무쌍하게 움직인다.


울돌목의 영묘함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거북선에 올라보자. 울돌목 거북선은 해남 우수영과 진도 벽파진 사이 10km 구간을 운항하는 유람선으로 울돌목의 거친 조류와 명량해전의 역사적 현장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다. 소요시간은 약 1시간 정도.


아울러 배가 출발하는 우수영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수군의 주력함이었던 판옥선을 복원, 전시 중이다. 철저한 고증을 거쳐 전통방식으로 건조된 것으로 구석구석 용맹한 기개가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