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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여행 - 천년고찰 '신륵사' 경내를 돌며 나를 치유하다~!!

채우리1 2015. 7. 25. 02:25

 

 

 

 

 

천년고찰 '신륵사'

경내를 돌며 힐링과 나를 치유하다~!!

 

 

더운날씨로 걷기엔 조금 힘들순 있지만

신륵사 일주문을 들어서면서 왜 천년고찰일까?

삘리 알아보고 싶어 궁금증이 증폭된다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때 창건했다고 한다

원효대사의 꿈에 흰옷입은 노인이 나타나 지금의

절터에 남아있던 연못을 가리키며 '신선한 가람'이 설곳이라고

알려준후 사라지니.. 연못을 메워 절을 지으려 했으나

잘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원효대사가 7일동안

기도를 올리고 정성을 드리니 9마리의 용이 그연못에서 나와

승천한 후에야 그곳에 절을 지을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신륵사는 헌종의 조모 순원왕후(純元王后)에 의하여

절을 크게 중수하여 영릉의 원찰로 불려지기도 했다고 전해지기도~

 

 

 

 

신륵사로 들어가는 일주문이다

마침 스님두분께서  신륵사 경내로 들어가시고...

 

 

 

 

" 원호장군 전승비 "

 

조선중기의 무신 원호장군은 선조25년(1592년)때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신륵사 일대에서 남한강을 도강하는 왜병을 무찔러 대승을 거두었다고 한다

 

 

신륵사 극락보전에서

49일 기도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신륵사의 해설을 재밌게 들려주셨던 문화해설사!

 

 

 

 

" 구룡루 "

원효대사가 7일동안 정성을드려 기도를 올리니

연못자리에서 9마리의 용이 승천했다는 구룡루~!!

 

 

 

 

 

"은행나무에 오신 관세음보살"

 

이 은행나무는 660여년전 고려말 공민왕사때

나옹스님이 심은것으로 전해지며  불, 법, 승, 삼보를

상징하듯이 세줄기의 가지모습도 갖추었다고...

신륵사 은행나무에 나투신 것처럼 보인다고 전해진다

수령은 약600여년으로 신륵사 보호수다

 

 

 

 

" 보물 제226호 신륵사 다층전탑 "

 

벽돌로 쌓은 신륵사 '다층전탑' 은 높이 9.4m로 우리나라에서

원형상태로 유일하게 남아있는 고려시대 전탑으로 알려져있다.

 

 

 

 

" 대장각기비 大藏閣記碑 보물 제230호"

 

목은 이색이 공민왕과 부모의 명복을 빌고자 나옹의 제자들과

발원하여 대장경을 인쇄하고 보관하기위해 이곳에 2층의 대장각을 지었다고 한다

 

 

 

 

" 신륵사 삼층석탑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33호로 내가 보기엔

보기좋은 정자옆 위치 강 언덕에 마치 보물처럼

귀중해 보였는데 그냥 삼층석탑으로만 불려지고있다

 

 

 

 

 

" 보제존자석종 보물 제 228호 "

" 보제존자석종비 보물제 229호 "

" 보제존자석등 보물제 231호 "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과 석종비, 석등은 보제존자 나옹(懶翁)이 선종과 교종을 통합하여 불교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 하였던 승려로, 나옹이 양주 회암사 주지로 있다가 왕의 명으로 밀양에 가던 도중 이곳 신륵사에서 입적하니, 그 제자들이 절 뒤에 터를 마련하여 사리를 안치한 유물들로 고려 우왕 5년(1379)에 세운 것으로, 확실한 연대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며, 고려 후기의 대표적 부도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 (驪州 神勒寺 普濟尊者石鍾. 보물 제228호)은 나옹의 사리탑으로, 널찍하게 마련된 단층 기단(基壇) 위에 2단의 받침을 둔 후 종 모양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돌을 쌓아 넓게 만들고 앞쪽과 양 옆으로 계단을 두었다. 탑신은 아무런 꾸밈이 없고,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불꽃무늬를 새긴 큼직한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솟아 있다.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비 (驪州 神勒寺 普濟尊者石鍾碑. 보물 제229호)은 보제존자 나옹의 추모하여 세운 탑비이다.

이 비석은 높직한 지대석(地臺石) 위에 괴임돌 1단(段)을 놓고 앙·복련(仰覆蓮)의 3단의 받침 위에 대석을 마련하여 장방형(長方形) 홈을 파서 대리석(大理石) 비신(碑身)을 꽂고 지붕돌(蓋石)을 덮었는데 기왓골과 막새기와가 표시되어 있어 주목된다. 비신 좌우에 지주(支柱)를 세운 것은 같은 경내(境內)의 대장각기비(大藏閣記碑)와 같은 것으로 고려말(高麗末)의 한 양식이라 하겠다. 받침부분의 윗면에는 연꽃무늬를 새겨 두었다. 비신의 높이는 120cm이며, 비신의 너비는 61cm이다.

비문은 이색(李穡)이 지었다. 비의 전면(前面)은 석종기(石鐘記)와 진당시(眞堂詩)로 양분되어 있고, 유명한 서예가인 한수가 글씨를 썼는데 부드러운 필치의 해서체이다. 글을 지은 사람과 쓴 사람의 직함과 성명(姓名)을 서두에 쓰지 않고 시의 끝머리로 돌린 것은 드문 예에 속하는 것이다.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 앞 석등 (驪州 神勒寺 普濟尊者石鍾 앞 石燈. 보물 제231호)은 나옹선사(懶翁禪師)의 묘탑(墓塔) 앞에 세워진 화려(華麗)한 장식등(裝飾燈) 8각석등(八角石燈)으로,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세부분으로 이루어진 받침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받침에는 표면 전체에 꽃무늬를 가득 새겨 장식하고 있다. 화사석(火舍石)은 각 면에 무지개 모양의 창을 낸 후, 나머지 공간에 비천상(飛天像)과 이무기를 조각했다. 지붕돌은 두꺼우나 여덟 귀퉁이에서의 치켜올림이 경쾌하여 무거운 느낌을 덜어준다.

전형적(典型的)인 8각석등(八角石燈) 양식(樣式)을 갖춘 일종의 변형된 석등이다. 고려(高麗) 말기(末期)의 대표적(代表的) 양식(樣式)으로 조선시대(朝鮮時代) 장명등(長明燈)의 조형(祖型)이라 볼 수 있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경기 여주군 여주읍 신륵사길 73, 신륵사 (천송리)

*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http://www.heritagechannel.tv/Photo/EssayView.asp?category1stIdx=0&serviceMenuIdx=1&seriesMenuIdx=128&searchText=®isterType=businessTriphtmlServiceMenuIdx=4&htmlIdx=7087  (아고라뉴스발췌)

 

 

 

 

" 보제존자석종비 보물제 229호 "

 

고려말의 승려 보제존자 나옹의 묘탑과 영정을 모신

진당을 조성한 내력을 적은 비다

 

 

 

" 보제존자석등 보물제 231호 "

 

보제존자 나옹의 부도를 밝히기위해 서있다고 한다

 

 

 

 

해설사님의 설명을 경청하며 석등의 선녀의 나빌레라 선녀옷을

만지면 아기를 갖는다는 전설이 있다고 전해져 사람들의 손길이 묻어 반질반질하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의작열~

뜨거운 햇빛을 양산으로 가리고

보물을 만나러 계단을 오르고 있다

 

 

 

 

 

신륵사 경내를 둘러보다

건너편 황포돋배 나루터를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