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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레저] 고로쇠 물 똑~똑~ 봄 오는 소리 졸~졸~

채우리1 2008. 3. 7. 12:09

[week&레저] 고로쇠 물 똑~똑~ 봄 오는 소리 졸~졸~

중앙일보|기사입력 2008-03-07 05:44


[중앙일보 김한별] 꽃은 봄의 전령이다. 사람들은 기상청 수퍼컴퓨터보다 눈앞의 작은 들꽃이 전해주는 봄소식을 더 믿는다. 이맘때면 다들 ‘꽃타령’을 하는 이유다. 순천 금둔사 홍매는 피었을까? 구례 산수유 꽃은 아직인가? 한데 올해는 소식이 많이 늦다. 늦추위에 꽃들이 뜸을 들이고 있는 탓이다. 그래서인지 썰렁한 삼단논법 농담이 떠돈다. ‘봄이 오면 꽃이 핀다, 아직 꽃이 안 폈다, 고로 봄은 아직 안 왔다’고. 과연 그럴까? 봄을 찾아 남도로 떠났다.

<전남 구례>글·사진=김한별 기자

피아골은 전남 구례군 연곡사에서 지리산 제2봉인 반야봉에 이르는 계곡이다. 길이가 약 20㎞. 능선 곳곳엔 아직도 눈이 남아 있고 골짜기를 덮은 얼음은 여전히 두껍다.

피아골 초입에는 작은 마을이 하나 있다. 직전마을이다. 인근에 피밭(稷田)이 많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피아골의 원래 이름도 피밭골이었으니, 결국 한가지 뜻이다. 평소 같으면 등산객들이나 찾는 한적한 곳인데, 요즘 이곳이 술렁대고 있다. 기다리던 고로쇠 물이 터졌기 때문이다.

꽃보다 먼저 봄을 알리는 고로쇠

고로쇠 물은 수액(樹液)이다. 단풍나무과에 속하는 고로쇠 나무에서 나온다. 일반 물보다 당분과 칼슘·마그네슘 등 미네랄 성분이 많다. 고로쇠라는 이름 자체가 뼈에 좋다는 뜻의 골리수(骨利樹)에서 나온 말이다. 채취철이 되면 전국 각지에서 사람이 찾아오고 통신판매 주문이 밀려든다. 하지만 그저 몸에 좋은 줄만 알지, 고로쇠가 꽃보다 일찍 봄을 알린다는 걸 아는 이는 드물다.

수액은 2월 말에서 3월 말, 특히 경칩(5일)을 전후해 많이 나온다. 거기엔 과학적 원리가 있다. 잎 없이 겨울을 나는 나무는 광합성을 못하고 호흡만 한다. 동물처럼 산소를 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뱉는 것이다. 밤이 돼 기온이 내려가면 이 이산화탄소가 나무 속 물관에 녹아 들고, 물관은 진공 상태가 된다. 그 압력 차에 의해 뿌리에서 물이 빨려 올라온다. 낮이 되면 반대 현상이 일어난다. 기온이 올라가면서 기체가 팽창하고, 물관 속 압력이 올라간다. 이때 외부에서 구멍을 내면 역시 압력 차에 의해 수액이 밖으로 흘러나오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게 낮·밤의 기온 차다. 일교차가 크면 클수록 물의 양이 늘어난다. 보통 밤 기온 영하 2~3도에 낮 기온 영상 11~12도, 일교차가 10도 정도 될 때 최고조에 달한다. 바로 초봄, 딱 이맘때다.

나무와 벗한 사람들

“(2월)15일 지나 한번 나오고 내 안 나왔당께. 어제부터 막 쏟아지더라고.”

수액을 받는 염성준(64)씨는 신이 나 있었다. 염씨는 평생을 피아골에서 살았다. 어려서부터 고로쇠 물을 먹고 자랐다. “아따, 우리 어릴 때야 이거시 돈 된다는 걸 알았당가? 그저 우리끼리 계곡서 밥해 먹고 놀다 목 마르면 받아 마시는 게 다였제.”

채취 방법도 달라졌다. 옛날엔 나무에 마구잡이로 상처를 냈다. 톱으로 썰고, 도끼로 찍고, 밑동에 V자 모양의 상처를 내기도 했다. 지금도 수령이 오래된 나무엔 그 시절의 ‘흉터’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자연 훼손 논란이 일자 산림청에서 엄격한 기준을 마련했다. 톱이나 도끼는 안 된다. 전동드릴로 지름 0.8㎝, 깊이 1.5㎝ 이내의 구멍만 뚫어야 한다. 숫자도 제한을 받는다. 지름이 10~19㎝인 나무는 하나, 20~29㎝ 짜리는 두 개, 30㎝ 이상은 3개까지 뚫을 수 있다. 수액 채취가 끝나면 상처가 빨리 아물도록 유합제를 발라줘야 한다. 문제는 과연 사람들이 이 기준을 제대로 지키느냐다. 환경단체들은 일부 농민들이 돈 욕심에 고로쇠 나무에 마구 구멍을 내고 있다고 비판한다. 염씨와 함께 온 김윤식(50)씨는 이 얘기에 버럭 화를 냈다.

“피아골은 전체가 국립공원 아니당가. 여기 고로쇠 나무들은 죄다 서울농대연습림 소유고. 공원관리공단 사람들도 글치만, 특히 서울대 사람들이 얼마나 깐깐하다고. 한번 찾아 보랑께. 여기 어디 여러 개씩 빵꾸를 낸 나무가 하나라도 있능가. 설령 단속을 안 한다고 혀도 그래. 우리랑 평생 함께 살아가는 나무인디 함부로 하면 절대 안 되는 것이제.”

채취 허가를 가진 직전 마을 사람은 총 15명. 한 그루에 2200원씩을 내고 나무를 임대해 고로쇠 물을 받고 있다고 했다. 군락지 주변엔 밧줄이 쳐져 있고 ‘고로쇠 나무 생태 모니터링’이란 푯말도 붙어 있다.

산자락의 수줍은 봄

고로쇠 물이 펑펑 터지기 시작했으니 꽃 아니라도 어딘가에 ‘봄의 조짐’이 보일 성 싶었다. 고로쇠 군락지를 둘러보고 내려오며 계곡을 살펴봤다. 꽝꽝 언 얼음장 위엔 겨울의 기운이 완강한데 그 밑으로 얼음 녹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졸졸’이 아니라 펑펑! 경칩 지나 어느새 개구리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났다. 연곡사 입구 웅덩이엔 개구리 알이 수북했다.

꽃도 간간이 보였다. 매화·산수유 같이 크고 화사한 꽃은 아니지만, 작고 소담스러운 들꽃이다. 피아골을 내려와 화엄사 가는 길목에 들른 운조루(雲鳥樓). 조선 영조 때 지어진 이 만석꾼 저택 앞에서 샛노란 복수초 두 송이를 만났다. 이 집안 셋째 며느리 곽영숙(38)씨는 “이제나저제나 하고 유심히 지켜봤는데, 오늘 드디어 꽃망울이 터졌다”며 밝게 웃었다.

고로쇠 물 구례군에는 고로쇠 채취 마을이 많다. 직전 마을 외에 토지면 문수리, 황전·방광·상위 마을 등이다. 보통 18L 한 통에 5만원씩 받는다. 지리산 한화리조트에서도 고로쇠 수액을 주문 판매하고 있다. 18L짜리가 배송비를 포함해 6만원. 4.3L짜리는 4팩이 6만5000원, 2팩이 3만5000원이다. 061-782-2171. 고로쇠 물은 오래 두면 부유물이 생긴다. 상온의 경우 2~3일, 냉장 보관할 경우에도 일주일을 넘기지 않는 게 좋다.

볼거리 산수유꽃 축제가 20일부터 23일까지 산동면 지리산온천관광지 일대에서 열린다. 산수유를 이용한 염색, 한지 공예, 술 담그기 등 다양한 체험행사에 참가할 수 있다. 061-780-2390. 전라남도에서 운영하는 섬진강토산어류생태관이 11일 간전면 섬진강 변에 문을 연다. 갈겨니(사진) 등 섬진강 토종 어류 50여 종을 구경할 수 있는 전시관 등이 조성된다. 입장료 어른 2000원, 학생 1000원.

구례군 먹거리 구례읍에서 다락마을 가는 길에 있는 전원가든은 참게 매운탕을 잘한다. 대(大)자가 5만원. 061-782-4733. 산동면 양미 한옥가든은 흑염소구이 전문. 고기가 노린내 없이 깔끔하다. 1인분 1만6000원. 061-783-7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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