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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농암종택

채우리1 2009. 1. 6. 12:43

안동 농암종택

 

안동 농암종택“저기. 내가 00마을 갈라카는데 여기 어디래요?”
 이 말 한마디에 80km의 속도로 달리던 67번 좌석버스가 도로 한 가운데서 갑자기 멈춰 섰다
“할매, 여기래요” 버스 운전사가 말했다. 하지만 할매는 휑한 주변 풍경 때문인지. 아니면 갑자기 멈춰선 버스 때문인지 머뭇거렸다. 그러자 주변 할배가 말을 거든다.
“ 할매, 정확히 가는 곳이 어디래요?”
“어...머..거..뭐냐...그 ...아..태재, 태재라 캤다.” 핼매의 더듬거림에 답답함을 느낀 또 다른 할매가 소리친다.
“할매 여기요. 어여 내리소,. 다들 빨리 가야카는데.”
무거운 짐을 들고 내리는 할매 뒤에서 할배가 다시 말을 건낸다.
“할매, 누구네 집 왔는교?”
“한구, 이한구래요.”
“아..한구네는 저 밑 저기.저기 저 집이래요.”
그렇게 버스는 도로 한 가운데에 3분 가까이 서 있었다. 하지만 버스 뒤에서 기다리는 차는 한 대도 없었다.

 

안동 시내버스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냥 갑자기 도시가 너무 갑갑하게 느껴졌고 조용한 곳 어디로라도 떠나고 싶었던 차에 노인들의 대화를 들으며 ‘여행지를 잘못 택하진 않았구나’ 란 생각을 했다.
 

그냥 쉬고 싶었다. 안동에 있는 고택을 선택했다. 옛 선비들처럼 나도 고택에 머무르며 시원한 풍경을 벗 삼아 심신을 달래고 싶었다. 어딘가를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이 아닌, 그저 그늘 아래서 소설을 읽고 낮잠을 자며 망중한을 만끽하겠다고 생각했다. 버스터미널에서 67번 버스를 30여분 타고. 또 다시 내려서 30여분을 걸으니 농암종택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장이라도 마당에선 돌쇠가 빗자루질을 하고 있고, 방에서는 도련님의 천자문 외는 소리가 들리며, 안채에서는 주인어른이 긴 곰방담배를 피고 있을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안동 농암종택 안동 농암종택
 

안동 농암종택문을 두드리자 얼굴은 약간 마르고, 희끗희끗한 머리칼은 바람에 휘날려 헝클어진, 실제로 조선시대 유생 같은  바깥어른이 나를 맞았다. 농암의 17대 손인 주인어른은 문간 옆에 있는 너른 방으로 날 안내했다.  종택의 방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있으니 금세 자연 에어컨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눈앞에는 파란 하늘과 푸르른 숲이 어우러진 기풍 있는 고택의 모습이 고요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가만히 누워 책을 읽었다. 책을 읽다가 농암종택의 평화롭고 조용한 분위기에 눌려 사르르 낮잠에 빠져들기도 했다. 이를 두어 시간 반복했던 것 같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잠시 뒤, 주변 구경이나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안주인에게 시내로 나갈 택시가 없냐고 물었다. 물론 산 속에 택시가 있을 리 만무했고. 그 질문은 마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버스 정류장까지 신세를 좀 질 수 있겠소”의 또다른 표현 방식 같았다. 안주인은 바깥어른이 마침 시내에 갈 일이 있었다며 태워주겠다고 말했다. 덕분에 점심도 얻어먹고 편하게 시내 근처로 나올 수 있었다.  터미널로 가기 위해 다시 택시를 탔다. 안동의 번화가를 거쳤다. 그때 한 상점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장춘당약국’ 시신경을 타고 들어온 간판의 이름은 깊은 곳에 저장되어 있던 10년전 과 여행의 추억을 금세 불러냈다. 이름을 빼곤 장춘당 약국도 10년전과 많이 변해있었다.
 

안동 농암종택어두워지기 전에 농암종택으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도산서원에 들러, 조상들도 얼마나 새빠지게 공부했는지를 확인했으며, 저녁으로 안동의 상징 자반고등어백반을 먹었다. 맥주 한캔을 먹고 책을 읽으니 금세 졸렸고 9시도 안돼서(그곳의 어둠은 9시나 12시나 다를 바 없었다)잠이 들었다.
 

다음 날, 여전히 무더웠다. 안동 주변을 좀 더 돌아다녔다. 목적지는 따로 없었다. 길 가다 좋은 풍경이 나오면 잠시 멈춰 광경을 눈에 담았고, 그곳의 고즈넉함을 몸에 새겼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 학생이 없는 학교, 이용객이 없는 기차역 등을 보며 평화로운 망중한을 즐기는 것이 바로 안동 예행의 목적지였다. 그날 바로 짐을 싸서 서울로 돌아왔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함을 깨기엔 충분했다. 10년 전 과여행의 추억을 안주 삼아 신선놀음을 했던 이번 안동 고택체험, 책 몇권 싸가지고 산으로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휴가가 가능함을 확인시켜준 기회였다

 

tip! 안동은 국내 행정 도시 중 면적이 가장 넓다고 한다. 남서쪽 하회마을에서 북동쪽 농암종택까지는 차로 한 시간이 가까이 걸린다. 때문에 렌트카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글 blog.naver.com/haine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