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아이는 반드시 명필로 일세에 이름을 드날릴 것이다.
그러나 만약 글씨를 잘 쓰면 반드시 운명이 기구할 터이니 절대로 붓을 잡게 하지 마시오.
만약 문장으로 세상을 울리면 반드시 크게 귀히 되리다.” _ 체제공

추사의 천재성은 어린시절부터 빛을 발한다.
체제공의 말처럼 말년에 기구한 운명을 보내게 되었으나 그의 천재성은 글씨와 문장 모두를
섭렵했다. 그리고 후세에 그만의 아름다운 글씨를 남겼다.

고즈넉한 추사 고택, 마당엔 모란이 심어져 있다.
그의 소탈한 무덤가엔 제주에서 사랑하는 제자를 위해 답했던
세한도에 나올법한 소나무 몇 그루가 심어져 있다.

고택의 기둥마다 써있는 주련의 글귀는 이렇다.
호고유시수단갈(好古有時搜斷碣) _ 옛것이 좋아서 때때로 깨어진 비석을 찾고
연경루일파음시(硏經婁日罷吟詩) _ 경전 연구로 며칠 동안 시를 읊지 못했네
춘풍대아능용물(春風大雅能容物) _ 봄바람처럼 큰 아량은 만물을 용납하고
추수문장불염진(秋水文章不染塵) - 가을물 같이 맑은 문장은 티끌에 물들지 않는다.

한 인간으로서 무엇에 통달하려면 천재성과 초인적인 의지가 필요한 것일까?
선비의 근성은 그의 글귀와 작품 곳곳에 배어 있다.
열개의 벼루에 먹을 갈았던 그의 마음을 알고 싶다.
예산의 백송. 우리나라에 몇 그루 밖에 없는 희귀종이다.
멀고도 먼 사신 길에 소나무의 종자를 가져와 조상의 영전에 심었다.
중앙과 동쪽가지가 부러졌으나 여전히 당당한 소나무의 기세는 이곳이 추사의 영역임을 각인시킨다.

우리의 정신문화는 고스란히 독립운동으로 이어졌다.
조선의 선비들의 대쪽같은 정신과 불굴의 의지는 이미 우리의 DNA에 스며 있었다.
독립운동 33인을 포함한 독립투사들은 조선의 선비정신을 이어 받았으며
정절을 지킬 줄 아는 우리의 아녀자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적성(赤誠)으로서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의 일원이 되어, 중국을 침략하는 적의 장교를 도륙(屠戮)하기로 맹세하나이다.
대한민국 14년 4월 26일 선서인 윤봉길 한인애국단 앞

마지막 죽음 앞에서도 대한 남아의 기개는 당당했다.
“날 범법자로 취급하지 마라.” “나는 동양의 평화와 세계평화를 위해 침략자를 응징하는
전쟁터에 나가 싸우다 포로가 되었을 뿐, 범인이 아니다.
<중략> 너희들이 설령 나의 목숨을 거두게 한다 할지라도
나의 정신만은 죽이지 못할 것이다”
丈夫出家生不還 장부출가생불환
사내대장부는 집을 나가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매헌 윤봉길 의사는 일본형사에게 취조를 받은 후 이 글귀를 써놓고 중국에 독립운동을 하러 떠났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자신의 신념을 지켰다.
무궁화가 피는 계절엔 한번쯤 가슴으로 느껴 보자.
거창하게 애국을 말하지 않더라도 변하지 않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기억하자.
이 땅을 피와 땀으로 가꾸고 지켜온 분들에 대한 존경심마저 잊고 살수는 없지 않은가?

[여행지 이야기]
충청남도 예산군은 한국정신문화와 우리의 고건축에 대하여 배우고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추사 김정희와 매헌 윤봉길의사가 탄생했으며 이 두 분의 생가와 기념관들을 돌아보며 가끔씩 잊고 살았던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또한 영주의 부석사 무량수전과 함께 현존하는 한국 최고의 목조건물인 국보 제49호 수덕사 대웅전이 있으며 가까이에 한국고건축박물관도 있습니다. 전국에서 가장 큰 예당저수지 주변으로 레져와 광장문화가 발전하였고 여행의 피로는 역사 깊은 덕산온천에서 마무리 할 수 있는 멋진 고장입니다.
추사고택 보기
충의사(윤봉길의사) 보기
한국고건축박물관 보기
수덕사 보기
덕산온천 보기
한국관광공사 국내온라인팀 사진기자 김지호
(augustli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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