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기운이 여기저기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시간입니다. 한낮의 따뜻한 날씨는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들고 사무실 창가로 보이는 저멀리 바닷바람도 한가로워 보입니다. 잔잔하게 바라다 보이는 서해바다의 넘치는 푸름이 오지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듯 합니다. 가끔씩 오가는 큰 배들의 뱃고동 소리가 저를 부르는가 고개를 자꾸 돌리게 됩니다.
그런 아련한 시간에 전라도 구례의 산수유꽃 축제를 다녀왔습니다. 회사의 워크샵을 겸한 여행이라 가족을 모두 내팽게치고 다녀왔습니다. 오가는 차도 팀원의 뒷자리에 마음편하게 앉아 자다가 깨다가를 반복하며 남의 일처럼 더녀왔습니다. 조수석에 앉아 따뜻한 햇빛이 차안의 아무일 하지 않는 저를 자꾸 취침모드로 빠지게 합니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리고 부담도 없이 잠을 잡니다. 그래도 잠에서 깰 때는 미안한 척 하는 센스는 보였습니다.
서해안 고속도로의 해미IC를 접어들어 군산IC를 나와서 구례까지 열심히 달렸습니다. 점점 따뜻해지는 남쪽나라의 봄기운을 받으며 아래로 아래로 내려 갔습니다. 구례를 다가갈수록 가끔 노란색의 물결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결국은 시끄러운 축제의 한가운데로 차가 들어 섰습니다. 수십개의 몽골텐트가 쳐지고, 음악소리가 진동을 하고, 차들은 먼저 들어갈려고 아우성이고, 해병대 전우회의 시끄러운 호르라기 소리는 우렁찹니다. 3월 20일 부터 시작하는 산우유꽃 축제의 한가운데로 발을 들여놓은 것입니다.
시끄러움을 피해서 리조트에 방을 잡고 간단히 족구를 하고 저녁을 먹으러 내려 갔습니다. 행사장 근처의 삼겹살집에 들어가 삼겹살에 쏘주를 정신없이 들어 부었습니다. 아무도 말리지 않고 서로 죽자는 식의 쏘주폭탄이 난무했습니다. 그 내키지 않는 분위기에 휩쓸려 정신이 몽롱해 질 때 까지 정신없이 전력질주를 하였습니다. 이차로 이어지는 나이트겸 노래방에서 12시 까지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양주, 맥주의 환상적인 폭탄이 제조되고 역시나 30여명의 시커먼 회사원들의 완샷의 외침속에 몸속에 들어 부었습니다. 그리고 간신히 리조트를 찾아와 다시 입가심 동동주에 맥주, 라면을 정신을 못차리고 먹고 뻗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지끈거리는 머리와 울렁거리는 배를 움켜잡고 들락날락하는 정신을 붙잡으려 안간힘을 썼습니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방을 정리하고 각자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이곳 멀리까지 와서 밤새도록 술만 푸고 가는 것이 너무나 억울했습니다. 그래서 그나마 정신이 있는 몇사람을 설득해서 근처에서 열리는 산수유꽃 축제를 들렀습니다.
아직 오전중이라 사람들이 붐비지는 않았지만 금방 밀어닥칠 사람들을 의식해서 정신없이 짤막하게 휙 돌아보았습니다. 우선 차를 타고 산수유 마을 근처까지 가서 파킹을 하고 사람들과 얼른 섞여서 가장 아름다운 View Point를 찾을려고 애썼습니다. 노란색의 군락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서 '와'하고 탄성이 나올 만한 곳은 없었습니다. 그냥 길따라 이어진 산수유꽃을 지나가면서 설렁설렁 보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나마 마을이 다 바라다 보이는 정자에 올라서서 모두를 조망하는 것으로 구경을 마쳤습니다. 날씨는 점점 더워지고 전날 먹은 술기운이 가끔씩 치밀어 올라서 간신히 간신히 둘러 볼 수 있었습니다. 동백꽃, 벗꽃도 군데군데 색깔을 드러내고 대나무의 푸르름도 있었습니다. 정신이 혼미한 관계로 그리고 사람들과 차가 부쩍 는 것을 눈치채고 부랴부랴 그 곳을 빠져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구례에 내려올 때는 내침김에 지리산도 가고, 화엄사도 들르고 부푼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나 술에 찌든 40대의 이 직장인은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그나마 노란색의 향연을 조금이라도 즐기는 것으로 마감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술이 웬수지요. 그래서 모든 부푼 꿈을 다 접고 집으로 돌아오는 처에 몸을 싣고, 다시 내려간 길을 되짚어 5시간을 꼬박 차안에서 자다깨다를 반복했습니다.
이번 가을에는 다시 한번 붉은색으로 물들 산수유 열매를 보러 가야겠습니다.
2008.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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