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롱거리던 별빛이 점점 바래져가는 새벽녘,
해안절벽에 아스라이 걸쳐진 천학정 누각에 올라선다.
발아래 기암괴석 사이로 하얀 포말을 이끈 파도가 일렁이는 소리가,
낡은 엔진을 털털거리며 파도를 가르는 배 한척이 고요한 새벽의 적막을 깨운다.
일순 암회색 칠흑 같았던 커튼을 치고 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며 햇덩이가 솟아오른다.
그 붉은 기운은 동해바다를 모조리 삼켜버리려 듯 온 수평선을 단숨에 물들여 버린다.
눈앞에 펼쳐지는 진경임에도 마치 신선들이 꿈꾸는 별천지를 그려 넣은 산수화를 보는 냥
장엄하고 아름답고 또한 황홀하다.
비밀스럽게 숨겨두고픈 동해안 최고의 일출명소 ‘천학정’
고성의 정자들은 아름다운 바닷가 언덕에 자리하고 있어 더욱 운치있다
바다풍경이 멋진 곳이라면 어디든 정자가 그림처럼 서 있다. 특히나 강원도 고성은 소위 이름깨나 떨치고 있는 해변들보다 소위 여행을 좀 안다는 사람들이 비밀스럽게 알음알음 아는 해변들이 많다. 당연지사 그 해변에 들어선 정자들도 역시 아는 이만 가는 아주 비밀스런 장소. 고성의 아야진 포구는 고성 8경으로 꼽을 만큼 운치 있는 두개의 정자를 안고 있다. 천학정, 청간정이 바로 그것이다. 두 곳 모두 일출과 월출이 아름다워 예로부터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다녀갔다. 그 중에서도 고성 현지인들의 적극적으로 추천으로 고성 8경으로 선정된 정자가 있었으니 그 이름하야 천학정. 아야진 고개를 넘어 교암리 마을 백도해수욕장 초입에 자리잡은 천학정의 역사는 다른 정자에 비해 그리 길지 않다. 1931년이 이 정자의 탄생일. 허나 그의 풍광은 짧은 역사와 절대 반비례한다. 동해바다의 신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천혜의 기암괴석과 깎아지른 해안절벽의 풍광과 100년 이상 된 해송들이 만들어내는 소나무 숲의 운치는 고즈넉한 정자의 멋을 오롯이 즐길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새벽녘, 수평선에서 떠오르는 일출 또한 절경.
천학정에 올라서면 백도와 능파대까지 조망할 수 있다
소나무 숲을 따라 계단을 오르니 아담한 정자가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다. 누각에 올라본다. 손에 잡힐 듯 동해바다가 펼쳐진다. 남쪽으로는 관동팔경 중 하나인 청간정과 백도를 마주보고, 북쪽으로는 능파대까지 아스라이 보인다. 상하천광(上下天光). 거울 속에 정자가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인 천학정에 앉아있노라면 근심걱정이 일시에 사라지고 다만 줄곧 머물고 싶은 욕심만 생겨날 뿐이다. 허나 고성이 접적지역이라 정자가 올라선 바닷가 양쪽이 군사보호구역의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시야를 가리는 통에 아름다운 고성의 바다를 오롯이 조망할 수 있는 없어 조금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어린 자연 그대로의 바다를 감상할 수 있는 특혜를 누릴 수 있는 곳 또한 고성이 아닐까 싶다.
밀려오는 파도가 뭉게구름처럼 일다 안개처럼 사라지는 ‘청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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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서 관동팔경의 수일경인 청간정을 소개치 않으면 많이 서운할 일. 고성군 토성면 청간리에 있는 청간정은 그 명성 뿐만 아니라 풍광 역시 뛰어나다. 설악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청간천과 만경청파가 넘실거리는 기암절벽 위에 세워진 청간정은 누가 언제 지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다. 다만 중종 15년에 수리했다는 것으로 보아 그 역사는 아주 깊다고 할 수 있다. 깊은 세월만큼 상처도 많다. 1881년 고종 18년에 화재로 타버린 것을 1928년 다시 재건했으나 한국전쟁 당시 다시 화를 입어 다시 보수하기도 했고 1997년 고성 산불로 크게 훼손이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겹처마 팔각지붕의 중층누정으로 아담하게 세워진 청간정의 현판은 1953년 5월 이승만 대통령이 친필로 쓴 것으로 알려져 있어 유명세를 탔다. 또한 그와 마주해 ‘악해상조(岳海相調) 수일경(秀逸景)’ 또한 눈여겨 볼거리. 산악과 바다가 서로 어울려 빼어난 경관을 뽐낸다는 뜻으로 최규하 전 대통령이 쓴 것이라 전해진다.
과연 청간정에 올라서니 겹겹이 밀려오는 동해의 파도뿐만 아니라 설악산 향로봉과 연봉의 울산바위까지 내려다 볼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온 바다에 불을 지펴놓은 냥 활활 타오르는 일출의 장엄함은 물론 월출의 경치 또한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 밀려오는 파도가 암석에 부딪히면 마치 뭉게구름이 일다가 안개처럼 사라져 가는 황홀경을 연출하기도 하는 곳 또한 청간정이다.
이승만, 김일성, 이기붕 별장 … 별들의 무대 ‘화진포’
동해안 최대의 석호이자 동해안 최고의 명승지 화진포(김일성 별장에서 내려다본 전경)
해안도로를 달리며 만나는 정자여행이 조금 단조롭게 느껴진다면 호수로 가보는 건 어떨까. 호숫가에 해당화가 만발해 이름 붙여졌다는 화진포는 둘레가 16km나 되는 동해안 최대의 석호이자 동해안 최고의 명승지로 알려져 있다. 맑은 물빛, 울창한 송림과 함께 겨울이면 넓은 갈대밭 위에 마치 ‘백조의 호수’ 를 연상케 하듯 수천마리의 철새와 고니가 날아드는 해변의 정취가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다.
김일성 별장은 현재 안보전시관으로 쓰여 아이들의 교육적 장소로도 좋다
화진포는 남녘땅에서는 최초로 외국인 휴양소가 들어선 곳이기도 하다. 또한 해방을 전후해 이승만 대통령, 김일성, 이기붕 씨 등의 별장들이 속속 세워졌다. 그야말로 별들의 무대인 셈. 사람들은 바다의 경관 중 최고를 화진포로 꼽는 걸 주저치 않는다. 앞서 말한 대로 최고 권력자들의 별장들이 이를 입증하기 때문. 일명 6. 25전쟁이 발발하기 전 김일성의 가족들이 사용했다고 하여 김일성의 별장이라 불리는 화진포의 성은 1938년 독일에서 망명해온 베버에 의해 지어진 원통형 2층 건물로 마치 유럽의 작은 성을 닮은 모습의 멋진 건축물이다. 현재는 안보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6살 김정일이 소련 레베제프소장 아들과 함께 찍은 빛바랜 사진은 현 김정일의 모습과 대비해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유족들에게 기증받은 유품을 모아 전시해놓은 이승만 별장
2층으로 올라가 창문을 열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파란 코발트빛 바다가 눈에 가득 담길 정도로 전망이 뛰어나다. 외에도 이승만 초대대통령의 유가족들로부터 유품을 기증받아 운영되고 있는 이승만 별장과 휴전 후 부통령이있던 이기붕의 별장도 있다. 세 곳 모두 화려했던 그들의 권력은 물론 분단의 역사와 함께 파란 많던 현대사를 품고 있어 매우 이색적인 안보관광지다.
‘백조들의 호수’ 송지호에 들어앉은 시간도 멈춰선 ‘왕곡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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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왼쪽 : 철새전망타워 위 오른쪽 : 송지호 전경 아래 오른쪽 : 왕곡마을 모습
송지호 역시 청정 석호로 자연호수와 죽도가 어우러지면서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이뿐 아니라 주변의 해수욕장과 철새관망타워가 하나의 관광단지로 조성되어 있어 사계절 내내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특히나 송지호에 자리 잡은 철새관망타워는 겨울이면 송지호에서 떼 지어 이리저리 날아드는 철새들의 군무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어린이들의 자연생태학습관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 외에도 송지호에 위치해 있는 왕곡마을도 둘러볼 만하다. 14세기 경 강릉함씨, 강릉 최씨가 용궁김씨와 함께 이 마을에 들어와 집성촌을 형성하고 있으며 인접하고 있는 구성리에 기와 굽는 장소가 있어 기와집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지금도 이 마을에는 19세기를 전후해 건립된 북방식 전통 한옥 21동이 전국적으로 유일하게 밀집 보존되어 있다. 송지호 뒤편에 5개의 울창한 산봉우리가 둘러싸여 있어 6.25동란 등 여러 전란에도 폭격한번 당하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있어 살아 숨쉬는 민속촌으로 꼽힌다.
끊어진 길에도 이어지는 부처의 가르침, 최북단 대찰 ‘금강산 건봉사’
건봉사는 9개의 말사를 거느렸던 한국 4대 사찰 중 한곳이다
한반도 분단의 특수성 때문인지 38선 이북에 위치한 고성의 관광지들은 유독 ‘최북단’ 이라는 접두어를 많이 붙인다. 최북단 통일전망대, 최북단 대진항, 최북단 명파리 마을 등이 그 예다. 금강산 건봉사도 역시 최북단이라는 말을 앞서 붙인다. 민족비극의 상잔 6.25도 바로 코앞이다. 통일의 염원을 담아 건봉사도 들러보자. 과거 건봉사는 민통선 내에 있어서 군부대의 허락 없이는 출입이 불가능했었다하나 현재는 자유롭게 통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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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과 멋 하나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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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즐기기>
◇ 천학정, 청학정 가는 방법
진부령을 내려와 검문소에서 우회전하여 다리를 건너면 간성읍내로 가는 도로와 우회로가 나오며, 이곳에서 좌회전하여 약 20분간 직진하면 송지호, 삼포를 거쳐 아야진고개를 넘어약 1Km정도 가면 청간정, 천학정 간판과 정자가 보인다.
◇ 화진포 가는 방법
서울 - 양평 - 홍천 - 인제 - 원통 - 한계리민예단지- (46번 국도 좌회전) - 백담사 입구 - 진부령 알프스스키장 입구 - 23.3km - 거진읍 대대리 삼거리 - 직진 - 6.7km - 자산교 - 자산리 3거리 - 북쪽으로 5km - 화진포 해수욕장
◇ 송지호 가는 방법
서울 - 양평 - 홍천 - 인제 - 원통 - 한계리민예단지- (46번 국도 좌회전) - 백담사 입구 - 진부령 알프스스키장 입구 - 간성읍 - 우회전 - 간성시내 - 송지호
◇ 건봉사 가는 방법
서울 - 양평 - 홍천 - 인제 - 원통 - 46번 국도 - 설악산 백담계곡입구 - 진부령 - 교동리마을 왼쪽 - 건봉사 들어가는 갈림길 - 건봉사까지 8.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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