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정보/추억을 담는여행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두얼굴의 도시 - 군산

채우리1 2009. 11. 11. 10:19

 

 

 

 "에두르고 휘몰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 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시가지) 하나가 올라 앉았다. 이것이 군산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군산을 배경으로 한 채만식의 소설 '탁류'는 이렇게 시작한다. 맑던 물도 군산에 이르면 탁류로 변한다는 암시적인 표현을 통해 일제 수탈의 역사가 서린 군산을 그린 소설이다. 조정래의 '아리랑' 역시 군산을 소설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두 소설에서는 일본인 지주의 땅에서 소작을 하고 일본으로 반출되는 미곡을 운반하며 삶을 연명할 수밖에 없었던 조선인들의 모습이 가감없이 그려진다.

 

 실제로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개항 110년의 군산에서 일본여행자 스에츠구 이찌로를 만난 것은 우연 이었을까? 시티투어 버스를 기다리는 군산 시외터미널 앞 이었다. "혹시 스에츠구씨 인가요?" 중년의 여성이 나에게 묻는다. 그녀는 오늘 시티투어의 문화해설사라며 일본 사람이 참석하기로 했는데 내가 아니냐며 물어 봤다. 이윽고 대머리가 훌렁 벗겨진 일본인이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며 나타났다.

먼 곳에서 출발한 투어 참가자를 위해 늦으막한 오전 11시쯤 출발한 시티투어 버스가 진포해양공원을 들러 군산의 대표 먹거리 게장 백반집에 도착했다. 4사람씩 팀을 이루어 앉게 된 밥상머리 맞은편에 일본인 스에츠구와 겸상을 했다. 걸신들린 사람처럼 게다리를 빨면서 그는 밥 두공기를 기세 좋게 해치웠다. "맛있어요" "맛있어요"를 연방 날리면서.... 식사하는 도중에 몇마디 나눈것이 통했는지 버스에 오르자 마자 보따리를 죄다 들고 그는 내 옆자리로 옮겨 왔다.

'키타큐슈시청 한일교류연구회 대표 스에츠구 이치로'라 한글로 새긴 명함을 건네 주었다. 그는 독학으로 한글과 한국어를 공부했으며 매년 6번씩 40회 이상 한국을 여행한 지한파라 자칭했다. 제주항공으로 인천공항에서 키타큐슈까지 1시간 25분이면 날아 갈 수 있고 후쿠오카에서 쾌속선으로 부산까지 3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이다. 더구나 엔고현상으로 서울시내는 엔화를 팍팍 뿌리는 일본 관광객들이 넘쳐 나지 않던가. 일본 국내 여행보다 볼거리 많고 먹을거리 많은 한국 여행이 매력적일 수도 있겠다.

 개항당시 5백명도 안되는 초라했던 이지역에 일본인만 8천명이 건너왔다. 간척지라도 얻어 보겠다는 조선인들까지 합세해서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루는 가운데 본정통인 지금의 해망로를 중심으로 10여개의 은행이 들어 섰다. 조선은행 군산지점은 1923년 일제식민지 지배를 위한 대표적인 금융시설로 건립되었다. 일본인 나까무라 요시헤이가 설계하고 적벽돌과 대리석의 르네상스 건축양식으로 지었다. 고대 일본 장수의 투구 형상인 지붕 아래로 창을 두어 자연 채광을 끌어 들였다. 해방이후 한국은행으로, 한일은행으로 명맥을 잇다가 개인 소유의 유흥시설로 바뀌어 버렸다. 일설에 따르면 지하에 바다로 통하는 비상통로가 있다거나 황금이 묻혔다는 소문으로 파괴가 가속되었다. 나이트 클럽에서 노래방으로 다시 흉물스런 폐가로 전전하던 건물은 최근 군산시가 매입해서 복원을 결정하기로 했다.

그나마 가장 보존이 잘되고 있는 건축물은 구 세관건물이다. 1908년 준공되어 1993년까지 85년동안 사용되었다. 개항이후 급증하는 선박왕래를 위해 일제의 강압에 떠밀려 당시로는 거금인 8만 6천원을 들여 건립했다. 벨기에산 벽돌을 수입해와 건물은 르네상스양식으로 지붕은 고딕양식으로 지어졌다. 특이한 것은 좌우대칭 이지만 서로 다른 형태의 아치창과 직선창을 두었다. 한국은행본점과 구 서울역사와 같은 건물양식이다. 현재 내부는 '호남관세전시관'으로 사진과 유물을 통해 교육전시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내항 일대는 '쌀 곳간'을 의미하는 장미동(藏米洞)으로 불린다. 일제가 곡창지대인 호남평야와 충청도 일대에서 수탈한 미곡을 저장했던 부두 창고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일제 강점기 군산항을 촬영한 흑백사진에는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쌀가마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내항 창고 3동에는 쌀 25만 가마를 동시에 보관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일제는 원활한 쌀 수송을 위해 군산과 전주 사이에 전국 최초의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개설하고, 익산에서 군산항까지 철도를 부설했다. 1930년대 호남 일원에서 생산된 쌀의 절반 이상이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됐다.

'뜬다리'라고도 불리는 부잔교는 조수간만의 차로 큰 배가 부두에 정박할 수 없자 수위에 따라 높이를 자동으로 조절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물이 들어오면 다리가 떠오르고 물이 빠지면 다시 가라앚는 독특한 구조로 되어있다. 투박하게 세워진 이 다리는 지금도 굳건히 서해 바다를 오가는 뱃길을 열고 있다. 3천톤급 배 4척을 동시 접안 할 수 있는 4개의 다리로 하루 150량 화차를 이용하여 호남평야 쌀을 일본으로 반출하였다. 지금은 부잔교 3개가 남아있다.

 매가 나는 형상이라 비응도(飛鷹島)는 지금은 세계 최장의 새만금 방조제의 시작과 끝이며 육지와 섬을 잇는 선착장이 되었다. 대부분의 항구에는 빨간등대와 하얀등대가 나란히 마주 서 있는데 이는 주등대를 보조하는 역할로 출입하는 배들의 방향을 설정해 준다. 빨간등대는 우현표식, 하얀등대는 좌현표식으로 바다의 신호등이라 할 수 있겠다. 비응항의 쌍둥이 등대는 그 모습이 앙증맞고 귀여워서 마치 동화의 세계로 접어 들게 한다.

비응도를 시작으로 신시도를 거쳐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까지의 바다를 메워 1억2천만평의 국토를 확장하고 33km의 방조제가 4조1천7백9십4억원의 공사비를 투입하여 2011년까지 완공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개인적인 방문을 허용하지 않아 시티투어를 이용하는 것이 새만금 방조제를 직접 돌아 볼 수 있는 좋은 여행 방법이다.

 

스에츠구는 우리나라의 지자체에서 전폭 지원하는 시티투어에 크게 관심을 보였으며 새만금방조제와 같은 대규모 간척사업은 환경 운동가들의 반대로 일본에서는 상상 할 수 없는 국가 사업이라는 의견도 말해 주었다. 때마침 국내 최대 규모라는 신시도의 배수갑문 10개가 활짝 열려 바닷물을 끌어 들이고 있었다. 국제해양 관광단지등 수많은 개발사업이 착착 진행되어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다시 태어나는 군산의 장밋빛 미래가 실현되기를 기대해 본다.

 

고군산군도는 군산에서 남쪽으로 약 50km 떨어진 옥도면 소재의 선유도 무녀도 방축도등 63개의 섬으로 구성되고 그 중 16개의 섬이 유인도이다. 옛지명이 군산도였으나 진포라 불리던 현재의 군산항에 그 이름을 빼앗겼지만 고군산8경은 변함없이 아름답다.

섬으로 가는 배안에서 스에츠구가 갖고 있는 두툼한 군산지역 여행 자료 중에서 하나를 꺼내 보여 주었다. 당황스럽게도 이미 기억에서 지워진 사람의 이름이 튀어 나왔다. 1978년 군산 선유도 해수욕장에서 17살의 나이로 납북된 김영남의 신문기사 스크랩이었다. 그는 대남특수요원 양성기관의 교관으로 근무하다 1977년 13세에 일본에서 납치된 요코다 메구미씨와 1986년 결혼했고 그녀는 딸(김혜경) 하나를 남겨두고 자살했다는 내용을 들려 주었다. 3년전 여름 금강산 호텔에서 김영남과 그의 어머니가 28년만에 상봉했다는 뉴스가 어렴풋이 생각이 났다. 일본내에서 요코다 메구미는 일본인 피납자 문제의 상징적 존재가 됐지만 우리는 5백여명이나 되는 납북자 송환 문제를 까마득히 잊고 살아 간다.

배위에서 바라보는 파란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세상이 갑자기 답답해져 왔다. 스에츠구와 나는 렌탈자전거를 이용해 서로 다른 감흥으로 선유도를 돌아 보았으며, 의사가 되기 위해 아주 바쁜 여고생 딸과 한국 드라마에 빠져 산다는 아내가 있는 키타큐슈시의 집으로 돌아갔다.

여행정보

<군산시티투어>

매주 토,일요일 시외터미널출발 군산역경유 매월 4개의 운행코스 순환제 이용료무료(중식,입장료,체험비 본인부담) 인터넷 http://gumsan.go.kr 전화 063-450-6110

<군산 맛집>

게장백반집은 군산 이마트에서 시청 방향의 경포초등학교 근처에 5,6천원대 게장백반집들이 몰려 있다. 만물회관 063-451-5033 금강식당 063-443-5760 진미식당 063-442-5854등이 지역 주민이 선호하는 식당들이다.

일제시대 개점하여 현존하는 빈해원의 중화요리(445-2429), 이성당 제과점(080-445-2772)도 여전히 성황을 이룬다.

연안여객선터미널 063-472-2727 유람선 063-442-8845, 445-57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