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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 사찰기행! 사명대사 호국성지 표충사에서 쉼표를~!!

채우리1 2016. 6. 3. 14:40

 

 

 

 

영남 알프스라 하는 밀양 재약산 기슭에

자리한  "표충사" 는 대한불교 조계종 본사인 통도사 말사이다

임진왜란때 승병을 일으켜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사명대사(四溟大師)

충훈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표충사당(表忠祠堂)이 있는 절이다

 

또한 유생들을 교육하고 성현들의

제사를 모시던 "표충서원" 유교와 불교의 사찰이 한자리에

공존하는 특색있는 사찰이었네요~

 

경상남도 기념물제17호 사명대사 호국성지 재약산의

표충사는 국보와 보물이 산재해 있는 보물창고이다

 

 

신라 무열왕 원년(654년)원효대사가 창건하고

임란에서 조국을 구하신 사명대사 유적지로 서산,사명,

기허등3대사의 영전을 봉안한 표충서원을 사찰안에 둠으로서

 절명을 표충사라고 부르게 되었다 하네요~~

 

산새가 좋은 표충사  경내만 잠시 둘러보며

템플스테이를 통해 생각을 비우고 마음도 쉬이고

머물고 싶은 생각을 하며 좋은 느낌을 담아 왔어요^^

 

 

 

 

 

푸른산새 속 나무와 일주문이

어우러져 풍경이 참 아름답다~~

 

 

 

여기서부터 문화관광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표충사 경내로 들어선다...

 

 

 

일주문을 들어서니

아름드리 나무들이 도열하듯 서있는

시원한 그늘속을 사브작 사브작 걸으니 좋다

 

 

 

사찰 경내로 들어서며...

 

 

 

 

사찰 경내로 들어 가려면

사천왕문을 꼭 통과해야만 한다.

 

 

 

"사천왕문"

 

이 문을 통과면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서는 문

동방 지국천왕(보검),  남방 중장천왕(용), 

서방 광목천왕(보탑),  북방 다문천왕(비파)

 

 

 

 

 

"표충사 (表忠祠)"

 

사명대사,서산대사,기허대사의

진영을 봉안하고 춘추로 불교와 유교 의식이

함께하는 호국성사 추모제를 지내고 있으며


 

 

 

"청동은입사향완 - 국보제75호"

 

부처님께 향완을 공양할때 사용하는 공양구라고 하며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후 그 틈에 은실을 넣어 장식하는

고려시대 은입사 공예의 절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현존하는 향안 가운데서 오래된 것이라고 하네요~!!

 

 

 

 

"목조관음보살좌상"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60호

표충사에 있는 조선 후기 목조관음보살좌상

 

 

사명대사 장삼가사

 

 

 

표충사 호국박물관에는 국보와

사명대사 유품등 3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사명대사 금란가사와 장삼

사명대사 임유정(任惟政, 1544~1610)이 입던 금란가사와 장삼이 각각 1착씩 이곳 유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금란가사’는 스님들이 장삼 위에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걸쳐 입는 옷이다. 사명대사의 금란가사는 황금색의 중국 비단으로 만들었으며, 가로 270cm, 세로 80cm이다.

‘장삼’은 스님들이 평상시에 입는 길이가 길고 소매를 넓게 만든 웃옷이다. 흰색의 무명으로 만든 장삼은 상의와 하의가 연결되어 있으며, 군데군데 훼손은 되었으나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금란가사와 장삼은 1973년 7월 16일 중요민속자료 제29호로 지정되었다.

양국 대장 사령깃발
양국 대장 사령(兩國大將司令) 깃발은 1604년 사명대사가 강화사로 일본에 갈 때 선조 임금이 하사한 길이 210cm의 깃발이다.

깃발에는 ‘사대선교행 이조판서 대광보국숭록대부(賜大禪敎行吏曺判書大匡輔國崇錄大夫)’, ‘영의정 양국대장 사명당 현제군 사령(領議政兩國大將四溟堂絃諸軍司令)’이라고 적혀 있어 어느 사령기보다도 격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매년 3월과 9월의 정일(丁日)을 기하여 거행되고 있는 사명대사 향사 시에는 이 사령깃발을 반드시 게양한다.
사령깃발은 1990년 1월 16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70호로 지정되었다.
사명대사 일본 상륙 행렬도 팔곡병
1604년 사명대사가 강화사로 일본에 갈 때 사명대사 일행의 행렬을 그림으로 그린 8폭의 병풍이다.

병풍에 등장하는 인원은 1,020명이라고 하는데, 그 중 20명은 사명대사를 포함한 조선 측 수행원이다. 당시 일본의 관행은 일반 사신을 영접할 때 보통 300명을 보내는데, 사명대사에게는 1,000명을 보내어 수행토록 했다.
사명대사 일본 상륙 행렬도 팔곡병은 1990년 1월 16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74호로 지정되었다.

(백과사전에서)

 

 

 

"표충사 대광전"

(지방유형문화재제131호)

 

표충사의 중심불전으로 가운데 석가모니불,

동쪽에는 질병과 무지를 다스리는 약사불, 

서쪽에는 서방극락세계를 주재하는

아미타불을 봉안하고 있다

 

 

 

"표충사 3층석탑 (보물제467호)"

 

통일신라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높이 7.7m의 3층석탑은 1998년 탑을 해체

복원하는 가운데 금동불상 39점과 명문지석등이

발견되어 현재 호국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다.

 

3층석탑옆  "석등"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4호)

통일신라 말기나 고려초기의 석등으로 추정된다

 

 

 

대광전에서 바라본

관음전과 명부전 전각~!

 

 

 

 

또다른 전각

독성전, 산령각이다

 

 

 

 

 "범종루"

 

우측의 범종은 중생들의 깨우치기 위한 법음이다

모든이에게 참다운 진리를 전하는 의미로

법음에는 범종,  법고,  목어, 운판이 있다.

 

 

 

 

사방이 트인 누마루 모습을 갖춘곳에

 올라가 잠시 앉아보니  사방으로 녹음이 우거진

산새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계절이 급격히 바뀌어 가는것 같다

5월20일께 쯤인데도 너무 더웠다 마루에 올라가

잠시 앉아보니  서늘한 바람이 좋구나~

 

 

 

가족인듯 보이는 아빠와 아이의 대화^^

 주고받는 이야기가 다정해 보여 흐믓하다~!!

 

 

 

 

 

1. 개요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재약산(載藥山) 기슭에 있는 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通度寺)의 말사이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사명대사(四溟大師)의 충훈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표충사당(表忠祠堂)이 있는 절이다.

2. 역사

원래 이곳에는 원효가 창건한 죽림사(竹林寺)를 신라 흥덕왕 때 황면(黃面)이 재건하여 영정사(靈井寺)로 개칭한 절이 있었다. 표충사라는 이름은 사명대사를 제향하는 사당을 당시 서원의 격으로 표충서원(表忠書院)이라 편액하고 일반적으로 표충사로 불렀는데 이 사당을 사찰에서 수호하여 왔으므로 사(祠)가 사(寺)로 바꾸어진 것이다. 원래 표충사는 밀양시 영축산(靈鷲山)에 있던 백하암(白霞庵) 자리에 있었고 사명대사의 제사를 모시기 위하여 나라에서 사원을 세우고 봄·가을로 제사를 지냈다.

그 뒤 병자호란이 일어나 승려들이 흩어지고 폐허가 되었던 것을 1714년(숙종 40)에 밀양 군수 김창석(金昌錫)이 사명대사의 충훈을 알고 퇴폐된 것을 민망스럽게 여겨 지방유지와 승려를 불러 사우를 다시 세울 것을 의논하였다. 한편으로 관찰사 조태억(趙泰億)에게 보고하여 조정에 계(啓)를 올려 나라에서 제수(祭需)를 내릴 것을 청하였다. 그리하여 사당을 다시 세워 사명대사와 그의 스승인 서산대사(西山大師), 임진왜란 때 금산 전투에서 전사한 기허당(騎虛堂) 영규대사(靈圭大師)의 영정을 모셨다. 그리고 한 전각을 사당 왼쪽에 지어 사명대사가 일본에 갈 때 가지고 간 원불(願佛)을 대구광역시에 있는 용연사(龍淵寺)에서 가져 와서 봉안하고,동서쪽에 요사(寮舍)를 지어 수호하는 승려가 살 수 있도록 하였다.

그 뒤 남붕(南鵬)이 크게 중창하고자 1738년(영조 14)에 사명대사의 행적을 갖추어 임금에게 올리니, 임금이 교지를 내려 표충사의 잡역을 면제하고, 전답(田畓) 5결(結)을 내리고 경상도 관찰사에게 중수하도록 명하였다. 이때 남붕이 총책임을 맡고 연초(演初)·취안(翠眼)·최심(最心)·상현(尙玄) 등이 도왔다. 사우를 3칸으로 하고 단청을 하였으며, 사명대사의 영정을 중앙에 모시고 동쪽에 서산대사, 서쪽에 기허당을 각각 모셨다. 또한 원불전(願佛殿)·노전(爐殿)·예제문(禮制門)·의중당(義重堂)·자하문(紫霞門)·명인루(明禋樓)를 세웠다. 사당의 좌우에 선원(禪院)과 교당(敎堂)을 세웠는데, 향교와 서원의 동·서 재실(齋室)과 같은 모양으로 하였다.

1742년 동쪽 10리 되는 곳에 사명대사의 비석(密陽表忠祠松雲大師影堂碑銘幷序)을 세우고 비각을 건립하였다. 이렇게 모든 사우를 정비하여 다시 세웠기 때문에 중흥사(重興寺)라 하였다. 그러나 향례(享禮)를 지낼 때마다 바람과 비를 만나게 되고, 산세가 옹색하고 길이 험하여 살고 있는 자나 제향에 참여하러 다니는 사람 모두 이를 병폐로 생각하여 불편함이 많았다.

이에 남붕이 옮기려고 뜻을 세웠으나 실현하지 못하다가 1838년(헌종 4) 사명대사의 8세손인 천유(天有)가 예조에 보고하여 부사 심의복(沈宜復)의 도움으로 1839년에 영정사 자리로 옮기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영정사는 이미 승려가 살지 않는 폐사가 되어 있었다. 여기에 사원의 배치를 옛날 체제대로 하여 영정사 관음전 자리에 사우를 신축하고 사명대사 원불을 대웅전 대들보 위에 봉안하여 예제문 3칸과 자하문 3칸, 명연루 3칸, 정문(正門)을 짓고 의중당 좌우(左右)를 동·서 재실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명부전(冥府殿) 자리에 영당(影堂)을 건립하였다. 남계료(南溪寮)는 심검당(尋劒堂)으로, 원통료(圓通寮)는 설법당(說法堂)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나한전(羅漢殿) 등은 그대로 두었다.

3. 문화재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1호인 대광전, 팔상전, 명부전, 경상남도 문화자료 제142호인 만일루, 표충서원 등이 있다. 또한 국보 제75호인 청동함은향완(靑銅含銀香垸)은 1177년(명종 7)에 제작된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고려시대 향로이다. 이 밖에도 보물 제467호인 표충사 삼층석탑, 중요민속자료 제29호인 사명대사의 금란가사(錦襴袈裟)와 장삼(長衫),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4호인 표충사 석등,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호인 표충사비 등이 있다. 절 일원이 경상남도 기념물 제17호로 지정되어 있다. (나무위키백과사전)

 

 

 

 

 

 

 

쉬고 싶을때 또는 피로에 지칠때

가끔 사찰을 찾고 싶을때 꼭 가고싶은 절이다

얼음골이 있는 밀양 재약산 자락에 자리한

표충사  다시 들르고 싶어졌어요

 

시간관계상 더 머물고 싶었지만 

한나절 경내를 둘러보며 작은 쉼표를 찍으며

 힐링의 시간을 담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