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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희한한 곳이에요.
<신의 물방울>이라는 와인을 앞에 두고 망설이던 얘기인데, 여기선 고갈비에 막걸리만 있으면 방언 터지듯 술술 나오잖아요. 백수 신세 면치 못하는 주눅 든 청춘도 여기선 꿈을 꾸었지요. “더럽고 치사해도” 참고 또 참아야 하는 넥타이부대들도 여기서 만큼은 어깨를 폈어요. “군대간다. 기다리지 말라”며 멋있는 척 하곤 골목으로 뛰어나와 눈물짓던 청춘은 얼마나 많았었나요. 그뿐인가요.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가를” 노래하며 나라를 걱정하던 토론은 횃불처럼 가열찼지요. 문학과 현실 앞에 고뇌하던 문학청년은 왜 그리 많았을까요.
인기가수 서인영은 “요즘은 내가 대세”라고 노래하지만, 보통사람 삶이란 게 어디 그런가요. 대세는 커녕, 대세 쫓기에도 버거운 비주류 인생이 태반인걸요. 썩 잘난 것도, 가진 것도, 그렇다고 '빽'도 없는 비주류라도 이 골목에선 제법 큰 소리 칠 수 있었는데….
여기요? 비주류가 주인이었던 골목, 이제는 작별인사를 건네야 하는 골목, “피맛이 날 때까지 토하도록 술을 마시는 곳”이란 엉터리 설명이 꽤 그럴싸했던 골목. 피맛골입니다.
안녕! 피맛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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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주머니로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 피맛골 주점촌 모습. 양반들을 피해 피맛골로 다니던 조선시대 서민들 역시 이곳에서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국밥으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고 전해진다.
피맛골에 가을바람이 분다.
서걱거리는 느낌이 마냥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재개발 바람 때문일까. 피맛골 일대 재개발 계획은 2000년대 초반부터 진행된 얘기지만, 최근들어 보다 구체화되고 있다. 서울시의 계획에 따르면 피맛골 주위는 고층빌딩으로, 피맛골은 보행로가 넓혀져 새로이 정비될 것으로 보인다. 어제의 피맛골은 이제 더 이상 없다는 의미다. 600년이라는 긴 역사와 그 역사보다 많은 서민들의 이야기를 간직한 피맛골로 이별여행을 떠나보자.
피맛골의 조선시대 ‘말을 타고 다니던 양반들을 피해 다니던 길’에서 유래했다. 말(馬)을 피했다(避)는 의미로 ‘피맛골’이라 불렸던 것. 종로구청이 설명하는 피맛골에 관한 내용을 보면 이렇다. “피맛골로 다니던 서민들은 출출할 때 허름한 국밥집에 들러 배를 채우고, 목이 칼칼할 때에는 막걸리를 마시기도 했다. 자연스레 이곳에는 가벼운 주머니로도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음식점과 주점들이 많아졌고, 늘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예나 지금이나 주머니 가벼운 서민들이 마음 편히 찾을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길을 따라 목로술집, 모주집, 장국밥집이 이어졌다고 한다. 피맛골의 상징이었던 열차집과 지금은 자리를 옮긴 시인통신, 실비집, 그리고 이름없던 막걸리 집 모두 과거피맛골의 연장선에 있었던 셈이다. 피맛골은 종로1가에서 4가 큰 길 뒤편 길 대부분이 해당된다. 광화문 교보빌딩 뒤편을 시작으로 청진동길, 국일관 맞은편 길, 종각역으로 접어들어 종묘와 세운상가, 종로3가역에 이르는 길까지 큰길 뒤편은 모두 피맛골이다.
"해장국골목이 완전히 사라질꺼라곤 생각 안 해. 그 세월이 한순간에 어디 가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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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제 28차 도시, 건축공동위원회의 결정에 따르면 피맛골 주위는 23층, 24층의 고층 빌딩이 들어서게 된다. 피맛골은 보존한다고 가닥을 잡았다. 보행로를 5m로 넓히고, 양쪽 건물 1층과 지하에 옛 모습을 되살리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마음 한 켠이 아린다. 먼저 재개발된 구역에 복원된 피맛골의 모습이 하도 가여워서다. 오랜 역사를 가진 음식점들이 하나둘 자리를 옮기고, 문을 닫는 요즘이다. 우리가 역사에 마음에 간직할 피맛골과 청진동해장국골목은 어떤 모습일까. 좁고 지저분했을 지언정 너른 폭으로 위안해 주었던 골목아니었을까.
안녕? 낙산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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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니에 공원과 방통대 골목사이로 올라가면 곳곳에서 주택과 자연과 어우러진 벽화와 조형물을 만난다.
피맛골과 이별한 슬픔은 낙산공원길과 만남으로 달래보자. 향하는 길은 낙산공원이라기보다 낙산공원 가는 길이라는 편이 맞겠다. 낙산공원가는 길은 ‘2006 공공미술낙산프로젝트’로 벽화가 그려지면서 대학로주변 새로운 명소가 되었다. ‘낙산프로젝트’를 보기 위해서는 우선, 낙산공원 방향으로 길을 잡아야 한다. 행정구역상 서울시 종로구 이화동 일대다. 지하철 4호선 혜화역 2번출구로 나와 마로니에공원과 방통대 사이 길로 직진하면 ‘공공미술낙산프로젝트’안내소가 보인다. 쇳대박물관 바로 옆이다. 노란색 컨테이너 박스 위에 세월 낚는 강태공의 조형물이 인상 깊다. 그 길을 따로 골목을 오르면 낙산공원까지 오르게 된다.
프로젝트 대상지인 벽화가 그려진 곳은 이화동과 낙산공원 사이. 통영의 동피랑마을이나, 고창의 돋음볕마을처럼 벽화가 한데 뭉쳐 있진 않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나는 벽화와 조형물은 반갑고 또 기발한 것들이다. 계단에서 날아오를 듯한 흰 새와 벽에서 자라나온 듯한 꽃과 나무들 모두, 본래 거기 있었다는 듯 태연히 이방인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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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동 일대에는 크고작은 봉제공장이 몰려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그림이 그려진 파란집에서도
재봉틀 소리가 들려왔다. 봉제공장이 많다보니 '시다(보조)구함'이라는 전단도 이곳에서는 낯설지 않다.
"우리 동네 사진 한장 찍을 때 마다 천원이여. 허허"
“사진 한 장 찍을 때 마다 천원이야” 하시며 주민 한분이 농을 걸어왔다. “공원이 된다고 들었어. 당장은 아니고 몇 년 후에 말이야. 그럼 새로 짓는 집에 들어가거나, 떠나거나, 다 그런 거 아니겠어.” 이런 이유로 주민들과 이방인 모두에게 여유와 미소를 건네주던 낙산공원길 벽화는 오늘도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낙산공원 골목길을 오른 이상 , 낙산공원을 그냥 지나칠 순 없는 노릇. 낙산공원에서 내려다보는 서울시 조망도 함께 즐기고 돌아가자. 낙산은 서울의 형국을 구성하던 내사산(남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의 하나로 풍수지리상 주산인 북악산의 좌청룡에 해당하는 산이다. 서울시 종로구와 성북구에 걸쳐 자리한 산으로 서울의 도성 동산에 해당한다. 산 모양이 낙타의 등과 같다고 해서 낙타산(일명 타락산)이라고 불렸다. 낙산은 일제시대 전까지는 수풀이 우거져 시민들의 산책장소로 각광 받았던 곳이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근대화를 거치며 주거지가 낙산을 잠식하게 돼 유물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를 복원하고자 서울시는 공원녹지확충 계획을 세워 낙산을 근린공원으로 지정하고 낙산의 모습과 역사성을 복원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 여행정보
피맛골: 종로1가~4가 큰길 뒷편. (1호선 종각역 1번출구)
청진동 해장국 골목: 1호선 종각역 1번출구에서 세종로사거리 방향, 농협 건물에서 우회전
낙산공원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2번출구, 마로니에공원과 방통대 사이 길 직진
‘공공미술낙산프로젝트’ 안내소(쇳대박물관 방향)에서 낙산공원방향으로 난 골목길
▒ 관련정보 클릭: 지금은 새둥지를 찾아 이전한 청진동 해장국 골목의 상징 청진옥
피맛골 가는 길은 곧 이곳에 가는 길 인사동
피맛골에서 인사동을 거쳐 도착하는 낙원악기상가
90년대 피맛골을 떠난 '실비집'이 전신인 이강순실비집
재개발 지역인 이화동 일대, 벽화를 만날 수 있는 낙산공원
초대 대통령 이승만 내외가 살던 곳, 낙산공원 가는 길에 있는 이화장
▒문의 서울 종로구 역사문화관광 http://tour.jongno.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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