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바람에 마음 먼저 추워지는 실향민들의 고향
“청호동에 가본 적이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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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속초 청호동 아바이마을, 실향민 문화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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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 속초라….
어딘가 을씨년스럽다. 속초하면 바다고, 바다는 여름이며, 바다가 아니라면 설악산이다. ‘속초’하면 떠오르는 연상작용이 그렇다. 이처럼 여름바다와 설악산으로 대변되는 대한민국 대표여행지 속초에 ‘실향민’들이 살던 마을이 있다. 실향민 1세대들이 모여 마을을 이룬 아바이(할아버지의 함경도 방언)마을이다. 아바이마을에는 갯배도 있다. 드라마 힘이 크긴 큰 모양이라, 아바이마을과 갯배에는 실향민이란 단어보다 지난 2000년에 방영된 <가을동화> 기억이 앞선다. 그리고 속초에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실향민을 기억하고 체험할 수 있는 실향민문화촌도 있다. 겨울바람이 선득 불어 올 때면 외로운 사람을 단박에 알아볼 줄 아는 실향민들의 고향, 속초로 떠나는 것도 좋겠다.
철지난 드라마 청호동의 일부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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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이 마을로 가주세요”라는 기자의 말에 택시기사는 “청호동이요”하고 말을 받았다. 이어 당연하다는 듯 “갯배 타실꺼죠?”한다. 정리하자면 청호동에 있는 아바이마을에 가면 ‘갯배’를 꼭 한번 타보는 게 수순이라는 뜻. 가장 먼저 갯배선착장으로 갔다. 갯배는 속초 시내와 청호동 아바이마을을 이어주는 일명 ‘무동력 해상교통수단’이다. 200원의 승선료를 내고 갯배에 올라탄 승객이 직접 배를 끄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금이야 속초에서 알아주는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갯배가 유명해 진 건 드라마 <가을동화>의 공이 9할이다. 지난 2000년 방영된 드라마임에도 현재까지 <가을동화>의 명성은 국내뿐 아니라 대만관광객들까지 불러들이고 있었다. 아바이마을 문화해설사 김유식씨는 실제 연간 갯배승선 인원 중 절반은 대만, 일본 관광객이라고 했다.
갯배는 드라마 촬영지이기 이전에 청호동과 속초시내를 연결해 주는 유용한 수단으로 그 역사가 꽤 오래다. 문화해설사 김유식씨의 설명이다. “갯배는 70년 전에 거룻배시절부터 시작했지. 거기에 우마차도 싣고 그랬지. 그때는 그 거룻배에다 통조림을 실어 날랐대. 여기 주변이 정어리 공장이 있었거든. 지금 갯배는 서른다섯명 정원으로 옛날보단 작은 배야".
설명은 자연스레 ‘아바이마을’로 이어졌다. “6.25 전쟁 때 함경도에서 남쪽으로 피난 온 사람들이 모여살면서 백사장이었던 곳이 마을이 되었다.” 통일이 되면 바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며 고향이 바투 보이는 이곳 속초에 자리를 잡고 살기 시작한 게 오늘날의 ‘아바이 마을’이라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실향민 1세대들이 대부분 세상을 등지면서 2~3세대가 6,000여 명 가량 살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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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어귀 나른한 한때를 보내는 흰둥이,누렁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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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와 가자미, 도루묵 등 생선에 밥을 넣어 삭히는 식해는 실향민들이 즐겨먹던 젓갈이다. 명태순대 역시 아바이마을에서만 맛볼 수 있는 함경도식 별미음식이다. 마을 어귀 드라마 <가을동화> 촬영장소가 된 이후 ‘은서네슈퍼’가 된 가게도 이방인의 발길을 붙잡는다. 아바이마을 골목길은 골목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바다로 통하기도 한다. 속초문화원에 따르면 아바이마을이 마을의 형태를 갖춘 건 70년대 중반이 지나서다. 그 이전에는 밖에서 문을 열면 바로 안방이 나오고 부엌이 보이는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고. 집과 집 사이가 오밀조밀해 사람들이 등을 맞대고 선 듯한 모양새나, 바닷가로 난 창문으로 안방이 보이는 형태가 예전 모습을 짐작케 한다.
하지만 가슴 아픈 실향민들의 사연으로만 돌아보기엔 아바이마을은 <가을동화>처럼 꽤 서정적이다. 해풍에 잘 익은 배추를 다듬는 아낙의 웃음소리도 좋고, 물질을 끝낸 늙은 해녀들의 뒷모습도 평화롭다. 파도소리를 자장가 삼아 골목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는 흰둥이와 누렁이의 나른한 모습마저도 아바이 마을이 주는 소박한 선물이다.
사람이 살지 않던 백사장, '속초리 5구' 아바이마을에서 청호동이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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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향민문화촌에 재현해 놓은 이북5도 가옥. 개성집, 평양집, 평안도, 황해도, 함경도 가옥이 있다.
↑ 실향민들이 청호동에 정착하면서 만든 피난민가옥. ↑종다래미 착용법을 설명해 주시는 이성오 옹.
아바이마을이 오늘날까지 이어진 실향민들의 터전이라면 실향민 문화촌은 복원한 실향민들의 삶을 보여준다. 실향민문화촌에 들어서면 제일면저 이북5도의 가옥이 보인다. 똬리집이라고 하는 개성집과 꺾음집인 평양집, 평안도, 황해도 함경도 가옥의 특징을 살려 복원해 놓았다. 스윽 눈으로 가옥들을 훑고 지나갈 즈음 할아버지 한분을 만난다. 실향민문화촌에서 짚공예를 하는 이성오(76)옹 이다.
“우와. 이거 할아버지가 만드시는 거예요?” 짚으로 바닥에서 넓적한 자리(?)를 만들던 이성오 옹은 “떽! 만들기는 뭘 만들어?! 만드는 게 아니고, 매는 거야”라 했다. 난데없는 호통에 관람객들은 얼떨떨한 눈치다. 이내 온화한 표정을 짓는 이성오 옹의 설명인 즉 “멍석은 매는 거고, 가마니는 치는 거야. 베는 짜고, 짚신은 삼고, 실은 짖는 거야”란다. 이성오 옹은 멍석 의 한 종류인 맷방석을 매던 중이었다.
덧붙여 “각기 다른 우리말이 있는데 왜 죄다 ‘만든다. 만든다’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마뜩찮은 기색이 역력했다. 자칫 정적인 분위기로 흐를 뻔한 이북5도 가옥 체험장에 장인정신 투철한 할아버지 한분이 생기를 불어 넣고 있었다. 짚공예 강의와 함께 우리말 수업을 듣는 것도 의미있는 시간이 될 성 싶다.
이북5도 가옥은 실향민 가옥으로 이어진다. 청호동 아바이마을 골목을 본따 놓은 곳에 이르면 ‘설마,설마 이랬을까…’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일명 ‘하꼬방’으로 불리던 당시의 가옥은 피난민들의 고단함이 그대로 배어 있다. 공동주택과 공통화장실의 모습, 아이를 업은 부인의 힘겨운 부지깽이질, 손바닥만 한 해가 스며드는 작은 창, 도매삼아 발라 놓은 지난 신문까지 ‘진짜’ 인양 가슴이 시리다. ‘불과 50여 년 전 모습일 텐데 전쟁의 참상을 너무 빨리 잊어가는 건 아닌지, 세계유일의 분단국인 현실에 너무 무심한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돠는 의미있는 체험장이다.
아바이골목과 더불어 은서네집과 지금은 사라진 속초역사의 모습도 체험할 수 있다. 특히 속초역사는 일제가 철광석을 수탈하기 위해 원한까지 연결되었던 동해북부선 역사 중의 하나였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경의선 뿐 아니라, 동해북부선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실향민문화촌에서는 세시풍속에 맞춰 다양한 문화 체험행사도 연다. 설날에는 복조리를 나눠주고, 정월대보름에는 액막이 연을 만들기도 하고 동지에는 팥죽을 나눠 먹는 등의 행사다.
사진 한 장에 소설 같은 이야기가 담기다 - 속초시립박물관 특별전시 실향민의 삶 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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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면, 이틀이면, 집으로 돌아갈 줄 알고 짐 푼 곳이 바로 청호동 아바이마을”
실향민의 사전적 정의는 “고향을 떠난 뒤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된 사람”이다. 실향민, 그들이 속초 아바이 마을에 짐을 푼 이유는 단하나 “하루면, 이틀이면, 일주일이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단다. 각지에 흩어져 있던 실향민들도 “속초에 가면 고향사람들이 많다더라”는 소식을 듣고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그리고는 고향과 가장 가까운 곳에 짐을 풀고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이념이 무엇인지 왜 싸워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속초시립박물관 아바이마을 설명 가운데)” 떠나왔던 젊은이는 어딜 가고, 마음 가득 바다색 멍이 든 노인만이 남았다. 돌아갈 고향이 있어서 더욱 악착같이 살아왔던 실향민의 고단하고 애절한 삶의 이야기가 아바이마을에 흐른다. 집집마다 널린 오징어의 짠맛도 그들의 눈물보단 묽지 않을까.
실향민문화촌과 이웃한 여행지
끝나지 않은 드라마 대조영 <대조영촬영지 설악씨네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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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 녹여줄 따끈한 순두부 <학사평 순두부마을 콩꽃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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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평사거리에서 한화리조트 방면으로 길을 따라 가면 학사평 순두부마을이 시작된다. 콩꽃마을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이 마을은 바닷물로 간수를 해 독특하고 부드러운 맛을 내는 게 특징이다. 집집마다 초록색 간판을 통일시켜 ‘웰빙음식’이라는 분위기도 물씬 풍긴다.
김영애할머니순두부, 김정옥할머니순두부와 같이 원조 할머니의 이름을 단 순두부집과 외가댁, 부부촌, 텃골순두부처럼 정감어린 이름의 순두부집들도 많다. 순두부와 함께 콩비지가 곁들여 나오며, 그 밖의 향토음식인 막국수와 황태해장국을 함께 취급한다. 순두부정식은 6,000원. 황태해장국은 7,000원 가량 한다.
설악산 등정에 도전한 테디베어 <테디베어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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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 아바이마을 미리 가보기 www.abai.co.kr ☏ 033-637-5596
♧ 아바이마을 갯배 미리 가보기
♧ 속초실향민문화촌 미리 가보기 ☏ 033-639-2976~8
♣ 문의: 속초시 종합관광안내소 ☏ 033-639-2690
♣ 강원도 관광안내전화 033-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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