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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의 기다림 아홉시간의 여행- 박연폭포, 청아함보다 개성아낙 손인사가 더 곱더라

채우리1 2009. 8. 27. 14:24

 


개성은 달랐다.
상상과도 다르고 또다른 북한 땅인 금강산과도 확연히 달랐다. 개성은 황량한 듯하지만, 소박한 맛이 있는 도시였다. 한결같이 “세트 같다”고 표현했다. 드라마 <야인시대> 영화 <장군의 아들> 같은 시대물의 배경이 되는 도심의 세트장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하지만 개성은 세트장이 아니다. 과거는 더더욱 아니다. 북쪽 땅 개성의 오늘이다.
60년 기다림 끝에 개성 땅을 밟는 마음가짐은 불손하게도(?) 호기심이 가장 앞에 놓였다. 중차대한 민족, 역사의식이 앞서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졌지만, 그게 범인(凡人)의 솔직한 대답일 터였다. 하지만 아홉 시간의 여행 끝에 호기심은 눈물 맺힌 아쉬운 기약으로 그리움으로 바뀌어 돌아온다.

                                   
조미료 쏙~뺀, 담백한 12가지 찬, 머슴주발에 조밥이 한가득

통일관 중식은 12가지 반찬에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박연폭포와 관음사를 오르는 것으로 오전 일정은 끝이 난다. 12시 20분에 시작되는 점심식사는 북측이 자랑하는 통일관 식당 12첩 반상이다. 남대문 뒤편 자남산을 오르는 입구에 위치해 있다.
찬으로 나오는 종류만도 12종으로 계란찜에 장조림, 숙주와 묵, 칼칼한 물김치에 감자전, 도라지 등의 반찬이 나온다. 굽고 튀겨 기름진 음식 대신 심심한 맛의 반찬은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옆자리에 앉아 식사를 함께 한 김영남 할아버지(81․서울)는 고향이 함경도라 했다. “개성 오니까 좋으시냐”는 우문(愚問)을 던졌다. “난 좋고 그런 건 잘 모르겠어. 자꾸 옛날 생각이 나. 산에 나무가 없어서 그게 가슴 아프고, 그냥 옛날 생각이 자꾸 나. 밥이 이렇게 많은데 이상하게 기름기가 없어. 이것도 가슴 아프고, 남기면 안 되는데…”.

한 시간 여 주어진 점심시간에 통일관 앞 사거리에서 개성시민들과 시내를 보다 가까이서 만날 수 있었다.

버스에서 막힌 유리 사이로 보던 거리와 달리 맨눈으로 개성시내를 바라보자 감흥이 컸다. 고향이 개성이라는 한 할아버지는 아예 북측안내원에게 ‘원포인트레슨’하듯 얘길 꺼낸다. 이리저리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마다 얘기가 술술 실타래 뽑히듯 멈춤이 없다. “예전에 여기는 죄다 한옥이었어. 이쪽은….” 이쯤 되니 현대아산 직원도 북측안내원도 그저 할아버지 얘기를 듣고 있을 밖에.  
 

                            “난 좋고 그런 건 잘 모르겠어. 자꾸 옛날 생각이 나.
                                  산에 나무가 없어서 그게 가슴 아프고….
                                밥이 이렇게 많은데 이상하게 기름기가 없어.
                                     이것도 가슴 아프고, 남기면 안 되는데…”.

 

고려충신 정몽주의 집터에 지은 숭양서원

선죽교 맞은편 표충비, 영조와 고종이 각각 세웠다

                                       
                                           
'
개성 뗄레비전' '선죽 리발소' '동흥 남새· 야채'   

선죽교를 향하는 버스는 또 한번 개성시내를 지나게 된다.
주택 사이로 상점이 눈길을 끌었다. 남새(야채)가게, 룡수산 식당, 개성뗄레비전, 콤퓨타색상사진가게, 리발소…. 다른 표기법과 간판 필체가 생경하다.
개성인과 개성시내를 직접 본 관광객들의 표정에는 신기함과 거부감, 희망과 슬픔 등이 한데 엉킨 양가감정이 읽혔다. 관광객의 손이 저도 모르게 카메라를 만지작거리게 될 즈음, “시내, 민가, 주민 촬영금지”라는 주의가 어김없이 들려온다.

덕분에 관광객들은 카메라, 그 정밀하고 정확한 기계조차 기록하지 못하는 장면들을 마음에 아로새기게 됐다. 이를테면, 콘크리트 벽에 새시 없이 뻥 뚫린 창가에서 수줍게 손 흔들던 까까머리 소년을. 자전거를 타고 가다 어색하게 손 흔들던 아저씨의 순박한 미소를. 파스텔톤 스카프를 두르고 하이힐을 신은 아가씨의 새침한 눈빛을….

후 일정은 숭양서원과 선죽교로 이어졌다. 숭양서원은 고려충신 정몽주의 집터에 그의 충절을 기리고 서경덕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문충당을 세운 곳. 1740년 영조와 1872년 고종때 세웠다는 거대한 표충비가 단연 인기다.
선죽교는 숭양서원 맞은편에 있다. 개성 선죽동의 선죽교는 919년 고려시대에 축조된 건물로 1392년 정몽주가 이방원에 의해 피살된 장소로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유명세에 비해 규모도 작고 길이도 짧다. 다만, 정몽주의 것이라 일컬어지는 붉은 핏자국 돌이 눈에 띈다. 다리 옆에는 한석봉의 필체로 큼지막한 비각이 있다.
                                

 

 

 

정몽주의 죽음 후 충절의 대나무가 돋아났다는 선죽교



고려시대 성균관의 건물과 부지를 이용해 개관한 고려박물관. 명륜관 앞 나무들이 장관이다.

개성관광의 마지막은 고려박물관. 고려시대 성균관 건물과 부지를 이용해 1988년 개관했다. 밝은 조명아래 더욱 빛났을 고려청자, 분청사기 등 1,000여점의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고려박물관에서 국보급 문화재보다 눈길이 가는 건 명륜당 앞 은행나무와 느티나무들이다. 50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을 예서 보낸 이 나무들은 어른걸음으로 스물네댓걸음을 걸어야 나무 둥치를 한바퀴 돌만치 크다. 500살이면 나무에 생명만 있는 게 아니다. 정신이 깃들어도 단단히 깃들었을 터. 나무들 저 역시 남쪽 마을서 잠시 놀러온 동무들이 반갑지 않을쏘냐 싶다.


                                        사진으로 남길 수 없었던 민초(民草)들의 교감

     고려박물관을 지키고 있는 해학적인 모습의 사자상

고려박물관 내부, 조명이 어둡다

오후 4시 30분, 북측출입사무소에서남측으로 가기 위한 출경수속이 이뤄진다. 북측군인들은 관광객의 카메라를 일일이 살핀다. 민가나 주민의 사진을 찍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카메라에 담긴 사진들을 살펴보니, 박연폭포, 통일관, 숭양서원, 선죽교, 고려박물관뿐이다. 정작 가슴 짜르르 했던 주민들과 개성시내의 모습은 없다.  
차라리 다행이지 싶다.
카메라 파인더로 주민들의 표정을 당겨봤다면, 눈 마주치며 손 인사를 나눌 기회가 없었을지 모른다. 카메라 파인더로 개성거리를 당겨봤다면, 수줍은 듯 따뜻하게 건네던 인사를 거둬들였을지 모른다. 그랬다면 박연폭포의 청아함보다 개성아낙의 손인사가 더 고왔음을 모른 채 돌아왔을지 모른다.

                                               
☆개성관광 ① 오전편으로 돌아가기


<여행정보>

◇예약안내: 전국 개성(금강산)관광 대리점 문의. 당일코스로 비용은 18만원 선.
◇출발 및 교통안내:  
개성관광 수송 버스 이용시 계동현대스포츠센터, 광화문역, 마포구청역, 잠실운동장역, 압구정 현대백화점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면 된다. 서울에서 출발해 임진각역, 남측 출입사무소까지 운행하며 요금은 5,000원이다.
개인 자가차량 이용 고객은 6시 30분까지 임진강 역 주차장에 도착해 남측출입사무소까지 셔틀버스로 이동한다. 
※내국인의 경우 신분증(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만 해당)을, 외국인이나 시민권자(영주권자)의 경우 여권을 지참해야 한다.

◇관광일정

연폭포→관음사→중식→숭양서원→선죽교→고려박물관→개성공단
◇관광시 유의사항
관광 중에 통용되는 화폐는 미국 달러($)이며, 금강산과 달리 한화는 쓸 수 없다.  사진 촬영은 정해진 장소에 한해서만 가능하다. 특히 버스 이동시와 군사지역, 북측 민가와 주민은 절대 촬영 불가. 담배와 주류 등의 기념품 구매 한도와 남측 반입 금지 물품을 확인하고 구매하는 게 좋다. 휴대폰과 휴대폰 주변기기는 휴대가 불가능하며, 카메라와 캠코더 등도 배율에 따라 제한될 수 있으므로 사전에 확인해야 한다. 통신기기, 휴대용 TV, 라디오, MP3, GPS 부착기기와 관광 목적에 어긋나는 서적이나 신문 등도 소지할 수 없다.
◇문의: 현대아산 개성관광 
http://www.ikaesong.com   02-3669-3000

전국어디서나 24시간 관광안내전화 ☏ 일반전화: 1330 / 휴대폰 02-1330